국민투표의 '안 좋은' 기억

입력
2022.05.0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에서 난데없이 국민투표가 소환됐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저지하기 어렵게 되자 국민의힘에서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6월 지방선거에 맞추면 어려울 게 없다는 주장이지만, 실현 가능성을 떠나 과연 검찰 수사ㆍ기소권 분리가 국민투표 대상인지부터 의심스럽다.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헌법 규정에 비춰보더라도 검수완박 입법은 국민투표 감으로 중량감이 떨어진다.

□ 실제 2004년 헌법재판소는 국민투표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에 대해 헌재는 '국민투표가 정치적으로 남용될 위험성’을 지적하며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특정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거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국민투표 역시 정치적 남용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직접 경험이 없는 40대 이하 세대에게는 제도 자체가 생소하다. 1948년 헌법제정 이후 국민투표는 모두 여섯 차례 실시됐는데,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이후로는 실시된 적이 없어 제도의 존재감마저 미약하다. 여섯 번 모두 개헌안과 헌법체제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였으며 대체로 박정희ㆍ전두환 군부정권 아래에서 무리하게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때문에 직접 경험해 본 50대 이상 세대도 국민투표가 그리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 국민투표법이 공백 상태라 현재로선 국민투표 실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 행사를 제한한 국민투표법 14조1항이 2014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하면서 투표인 명부를 작성할 수가 없다. 국민의힘은 이런 선관위 유권해석을 월권이라고 몰아붙이지만, 법개정 시한을 넘긴 국회의 태만이 빚은 입법 공백이다. 여야 정치권에 법개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선관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김정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