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호, '공기살인' 회식 자리에서 눈물 흘린 이유 [HI★인터뷰]

입력
2022.05.01 10:46


'내가 뜨거운 사람들과 함께하게 됐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자랑스러운 작업을 하게 됐다고 느꼈죠.

배우 윤경호는 '공기살인'의 회식 자리에서 말을 잇지 못할 만큼 많이 울었다. "흥행 보장은 못 해도 창피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김상경의 말을 들은 후의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바라본 스태프들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벅차올랐고 윤경호는 눈물을 삼키느라 준비했던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너무 창피해 집에서 이불킥을 했다"고 털어놨지만 글쎄, 오히려 배우로서 윤경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K-ART 스튜디오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윤경호는 '공기살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작품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내비쳤다. '공기살인'은 가습기 살균제 재난 실화를 다룬 작품으로, 개봉 첫날 동시기 개봉작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피해자 가족과 관객들의 솔직한 평가

윤경호는 '공기살인'의 개봉 후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긍정적인 평가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실제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단다. 그는 "유가족분들이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본인들의 이야기가 왜곡될까 봐, 그래서 속상함을 안겨줄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시사회 때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대신 전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감사했다"고 밝혔다.

윤경호가 무대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관객들의 연령층은 매우 다양했다. 그는 "김상경 선배님이 '그게 좋은 영화다. 남녀노소가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다'라고 하셨다. 자부심이 느껴졌다. 와 주신 분들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시더라"고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평은 윤경호에게 깊은 울림을 안겼다. "아들과 같이 와서 관람하신 분이 '이런 이야기를 100번 말로 하는 것보다 이 영화 한 편이 훨씬 더 좋은 교육이 되는 듯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미디어의 사명을 다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기뻤죠."

숙연한 분위기의 촬영장

이 영화를 내놓기까지 배우들, 그리고 제작진은 큰 노력을 기울였다. 조용선 감독은 철저한 자료 조사와 검수를 거쳐 시나리오를 썼다. 출연자들은 역할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오투의 팀장인 서우식 역의 윤경호는 "촬영장이 즐겁지만은 않았다"며 "가슴 아프고 무거운 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는 만큼 출연자들은 진지한 태도로 연기에 임했고, 현장은 숙연했다.

누군가가 실제로 겪었을 일들이라는 생각에 촬영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공기살인'을 대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대부분 팩트를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촬영 전에 그 이야기를 들으면 감정이 복받쳐 올라올 듯했어요. 잠깐 멈췄다가 (촬영이) 끝난 뒤 듣고 나서 감독님과 부둥켜안고 울었죠. 감독님께서 늘 울면서 촬영을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서우식 캐릭터에 담긴 윤경호의 고민

서우식을 표현하는 과정에서도 깊은 고민을 거쳤다. 윤경호는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허구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면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고 했다. 이에 캐릭터의 특성을 지나치게 많이 부여하거나 연기력을 뽐내려고 하기보다는 눈빛으로 서우식의 진심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에 더해 조용선 감독과 목소리 톤, 표정 등 디테일한 부분을 자주 상의했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1급비밀' 등에 출연했던 김상경의 존재는 윤경호에게 큰 힘이 됐다. 윤경호는 "선배님이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에서 솔직하면서 담백한 연기를 많이 보여 주셨다고 생각한다. 선배님 덕분에 든든했다"고 이야기했다.

서우식의 안경과 물안개, 그 의미는

'공기살인'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장치, 장면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서우식의 안경이다. 윤경호는 "안경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벽이라는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안경 그 안의 진실과 밖에서 보이는 모습에는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평소의 이미지보다 더 지적으로, 그리고 차갑게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서우식과 정태훈(김상경)이 댐의 수문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도 메시지가 숨어 있다. 물안개가 깔려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실수 없이 촬영하기 위해 노력했단다. "물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장면은 가습기의 느낌을 주고자 했던 부분이었어요. '전부 가습기에서 나오는 공기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무시무시할까'라는 생각을 했죠."

사회에 꼭 필요한 '공기살인'

'공기살인'이 다루는 가습기 살균제 재난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문제의 살균제를 사용했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윤경호의 아내 또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내가 영화를 보며 지난날을 떠올렸고, 아찔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윤경호는 '공기살인'이 자신에게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할 영화'라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가습기 살균제 재난과 그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길 바란단다.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영화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듯해요. 보시는 분들이 '만들어져서 다행스러운 영화'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배우로서 정말 자랑스러울 듯합니다."

장르적 재미와 의미를 모두 담은 영화 '공기살인'은 지난 22일 개봉했다.

정한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