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공세적 핵 사용’을 선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엄포에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일단 지켜보겠다”며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은 데다, 굳이 북한의 ‘말싸움’에 말려들 필요가 없는 탓이다. 문제는 북한이 행동, 즉 고강도 핵 도발을 감행한 뒤다. 차기 정부는 한미일 공조 강화를 중시하지만, 일본이 북핵 위협을 방위력 강화의 구실로 삼을 수 있어 대응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27일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해 “북한의 입장에 일일이 논평하지는 않겠다”면서도 “중요한 건 한국이 처한 안보 상황이 엄중하고, 한미동맹의 강력한 유지와 억지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본 이익을 침탈하면 핵무력을 쓰겠다”는 북한의 협박에 ‘한미의 확장억제력 강화’라는 윤석열 당선인의 기본 대북정책으로 대응한 셈이다.
인수위도 비슷한 결을 유지하고 있다. 인수위는 전날 북한 열병식을 “평화를 위협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했지만, 김 위원장 발언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한미동맹 강화, 한국형 ‘3축체계(킬체인, 미사일방어체계, 대량응징보복)’ 능력의 조속한 완성 등 이미 알려진 윤석열 정부의 대북 공약을 환기시키는 데 그쳤다.
김 위원장의 연설은 언제든 핵무기를 활용해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무게감이 가볍지 않지만, 인수위가 말을 아끼는 건 실체도 확인되지 않은 북한의 주장을 믿고 섣부른 대응에 나섰다가 북한의 몸값만 올려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대미 억제력과 전술핵 기술을 완전히 확보했는지는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선제타격을 할 정도의 핵 운용 능력이 없으면서도 말을 부풀려 억제력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북한의 핵 사용 의지가 더욱 강해진 만큼, 시간이 갈수록 한국은 불리한 처지에 놓일 게 확실하다. 북한을 옥죌 제재 수단이나 국면 전환 카드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층 격해진 북한의 위협 수사에도 미국은 여전히 관망만 하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미국은) 한미일 등과 긴밀히 협력할 의무가 있다”면서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차기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확실한 차별화로 내세우는 한미일 공조도 북핵 제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변수는 일본이다. 자민당은 이날 ‘적기지 공격 능력’ 명칭을 ‘반격능력’으로 바꿔 일본 정부에 보유할 것을 제안했다. 이름만 변경했을 뿐, 선제공격 능력을 갖춰 ‘전수방위(공격받을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 위배’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일본 보수세력은 겉으론 김 위원장의 발언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반격능력을 구비할 추진 동력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가 3국 공조에 매달려 일본의 진짜 의도를 오판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3국이 같은 입장을 내게 하는 것이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