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잔혹한 무기인 '플레셰트'를 사용한 사실이 부차에서 학살된 민간인 부검을 통해 확인됐다.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등 곳곳에서 민간인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민간인 대피와 포로 교환을 위한 회담을 제의했지만, 러시아는 이에 응하기는커녕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부차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시신들에 대해 사후 검시를 시행한 결과 시체 수십 구의 머리와 가슴에서 작은 쇠못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무기 전문가들은 쇠못이 제1차 세계대전 때 널리 사용되던 대인용 무기 플레셰트(flechette)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어로 다트라는 뜻인 플레셰트는 길이 3~4㎝의 작은 화살이다. 한 폭탄에 최대 8,000여 개의 플레셰트를 넣어 발사하면 폭탄이 터지면서 축구장 3개 넓이까지 화살이 날아간다. 앞서 이달 초 플레셰트는 부차 곳곳에서 발견됐지만, 민간인 공격에 직접 사용한 사실이 증명된 것은 처음이다. 플레셰트는 대량 살상을 낳을 수 있어 인권단체들은 사용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플레셰트를 "울창한 초목에 침투해 많은 적군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된 무기"로 정의하며 "절대 민간인 지역에서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러시아군의 잔혹함은 마리우폴에서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곳곳에서 시신이 뒹굴고, 방치되고,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크라이나군의 유일한 저항지인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러시아군의 공습과 장거리 포격으로 고립무원 상태다. 이곳에는 마리우폴을 방어 중인 제36해병여단과 아조우연대, 1,000여 명의 민간인이 남아있는데, 이날 밤 공개된 제철소 내부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다. 벽엔 곰팡이가 피어 있고, 아기 기저귀가 없어 대신 비닐봉지가 사용됐다.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국제 지도자들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파리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하게 봉쇄하라”고 지시한 만큼 이들에게 남은 건 '항복 아니면 죽음'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추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연일 러시아에 평화회담 개최를 제안했지만, 협상 전망은 어둡다. 이날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특별회담 개최를 제안하면서 "(회담을 통해)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 확보와 아조우스탈 내 고립된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석방하거나 포로 교환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 대통령과 최근 대화를 나눈 관계자 3명을 인용해 "푸틴이 더 이상 평화협상에는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의혹을 제기하며 중단됐던 협상이, 러시아 흑해함대 모스크바호 침몰 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관계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평화를 위한 노력이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분노하며 우크라이나 영토를 최대한 많이 차지하는 방향으로 전쟁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러시아군은 25일 아조우스탈 제철소 내 민간인 대피를 위해 전투를 일시 중단하고 인도주의 통로를 개설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군 총참모부 산하 지휘센터인 '국가국방관리센터' 지휘관 미하일 미진체프는 "러시아군과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군이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8시)부터 일방적으로 전투행위를 중단하고 부대를 안전거리까지 후퇴시킨 뒤 모든 방향으로의 민간인 탈출을 보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