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의 중환자를 살해한 잔인한 살인마인가, 아니면 죽어가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한 인간적인 의사인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과다 처방해 환자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던 의사 윌리엄 허슬(46)이 20일(현지시간)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일단 살인자라는 오명은 벗어나게 됐지만 환자 유족의 민사 소송이 기다리고 있어 진실 공방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미국 오하이오주(州) 콜럼버스의 마운트 카멜 웨스트 병원. 허슬은 이 병원에서 2015년부터 중환자실 야간 근무 마취의로 일해 왔다. 논란은 2018년 가을 허슬이 처방한 펜타닐 양이 과다하다는 병원 약사들의 지적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의 한 종류인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 등의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고, 다른 진통제 종류인 모르핀보다 50~100배 강한 효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중독성 문제 때문에 사용이 엄밀히 제한되고 있다.
병원은 자체 조사 결과 중환자실에서 숨진 환자 35명이 펜타닐을 과다 복용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 가운데 5명은 완치될 가능성도 있었던 환자라고 밝혔다. 병원이 경찰에 신고한 뒤 허슬은 2019년 6월 25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검찰이 11건의 혐의를 취하해 14명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허슬 측 변호인은 △환자들이 죽기 직전의 심각한 상태였고 △그들이 인공호흡기를 떼고 편안하고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복용량이 필요했고 △허슬의 행동은 비밀리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간호사들이 복용량을 관리했다고 반박했다. 허슬과 변호인은 재판에서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안락한 치료를 제공했지 그들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지 검찰은 허슬이 정상치 범위를 넘어선 오피오이드를 처방했다고 주장했다. 허슬이 여러 환자를 위해 펜타닐 1,000마이크로그램을 투여하게 했는데 이는 권장량의 약 10배라고 지적했다.
재판 결과 숨진 환자들은 약물 과다복용, 암, 뇌졸중, 뇌출혈 등 중병을 앓고 있었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지만 많은 수가 죽어가고 있었다는 점을 검찰 측도 인정했다고 WP는 전했다.
배심원단은 2개월의 재판 끝에 “펜타닐이 아닌 질병으로 14명이 사망했다”는 결론을 냈고 허슬은 종신형을 면했다. 허슬 측 증인으로 출석했던 조엘 지봇 에모리대 마취외과 부교수는 WP에 “허슬은 우리가 생각하던 죽음의 고통을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펜타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사들이 하는 일을 했다”며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는 최소한 죽음과 관련된 고통을 줄여줄 수는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