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의 중립성

입력
2022.04.2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입법 강행을 위해 꼼수 탈당 등의 편법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난관은 여럿이다. 가장 큰 문턱은 본회의 의사봉을 쥔 박병석 국회의장이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법사위원회에서 통과시키더라도 박 의장이 본회의 소집이나 안건 상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4월 국회 처리가 어려워진다. 박 의장이 검수완박 입법의 키맨으로 꼽히는 이유다.

□ 박 의장은 민주당에서 6선 의원을 지냈지만 현재 당적은 무소속이다. 2002년부터 국회법에서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의회 다수당에서 의장이 배출되긴 하지만 의장이 되면 특정 정당 편이 아니라 중립적으로 의사 일정을 관리하고 여야 간 갈등을 중재하라는 취지다. 물론 친정 정당의 압박에 못 이겨 날치기 통과를 수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친정의 입법 강행을 거부하면서 여야 간 합의를 중시한 의장들도 없지 않았다.

□ 14대와 16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날치기 처리는 안 된다"는 소신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고 새천년민주당 의원으로 두 번째 의장이 됐을 때는 김대중 정부와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김원기, 임채정 의장은 여야 합의를 중시하는 편이었으나 친정인 열린우리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보수정당에선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을 남용해 친정에 적극 협력한 반면 정의화 의장은 여러 차례 친정의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해 큰 갈등을 빚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정의화 의장 사퇴 결의안까지 추진할 정도였다.

□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노력한 의장들이 있었지만 국회의장의 중립성이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 어렵다. 2019년 공직선거법 강행 처리 당시에도 야당은 문희상 의장을 국회 파행의 주범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국회의장의 중립적 리더십 문화가 없다 보니 의원들조차 의장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박병석 의장은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의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선택에 따라 국회의장의 위상도 달라질 것이다.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