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보장과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장애인 관련 정책에 반발해 21일 출근길 지하철 승차 시위를 재개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관련 예산 보장 약속을 시위 중단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날 시위로 서울지하철 2호선과 3호선 열차 운행이 1시간가량 지연됐다.
전장연은 오전 7시부터 3호선 경복궁역과 2호선 시청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진행했다. 지난달 30일 시위를 멈춘 뒤 20여 일 만이다. 단체는 5호선 광화문역에서도 시위를 병행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이는 취소했다.
전장연은 지하철을 타고 다른 역으로 이동하는 종전 방식 대신, 열차에 탔다가 내리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했다. 휠체어를 탄 회원들이 줄지어 승차한 뒤 열차 내부를 가로질러 다른 문으로 하차하는 형태였다. 열차 안에서 이동할 때 일부 회원은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가는 이른바 '오체투지 시위'도 했다.
경찰과의 마찰도 발생했다. 경찰이 이번 시위를 집시법 위반 행위로 보고, 경복궁역 충무로 방향 승강장에서 시위를 시작하려는 전장연 회원들을 가로막고 열차를 출발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단체는 “아직 다 타지 않았다” “타고 내리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항의하며 경찰과 10여 분간 대치하다가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 참가자들은 시민 불편에 사과하면서도,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며 양해를 구했다. 대구에서 와서 시위에 참여한 김시형씨는 “이렇게까지 해야 국민이 될 수 있는 건가 싶다”며 “비장애인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인 지하철을 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유재근(39)씨는 “누구나 욕먹기 싫지만 바뀐 게 없으니 최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시민들에겐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시민들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는 시위를 응원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의 오체투지에 눈물을 보인 한 여성은 “대한민국이 약자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고 생각해 울컥했다”고 말했다. 임경미 충북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열차 안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주는 시민을 봐서 희망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의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이들은 “방법이 잘못됐다, 왜 불편을 주느냐” “왜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이러느냐”고 지적했고, 일부는 욕설도 했다. 전장연이 승하차 시위를 마치고 승강장에서 삭발식을 진행할 땐 침을 뱉고 지나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전장연은 추경호 후보자가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에서 장애인권리예산 관련 답변을 하겠다고 약속하면 시위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박경석 대표는 “인수위는 지난달 전장연의 요구안을 받아갔지만 (예산과 관련해선) 공식적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예산은 차기 정부의 몫이라고 한다”며 “이제 답을 줄 책임 있는 부처는 기재부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경호 기재부 장관 후보자가 검토가 아닌 답변을 하길 바란다”며 “청문회 때 답변을 내놓겠다고 약속하면 내일이라도 시위를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시위가 진행된 지하철 노선에선 열차 운행이 1시간가량 지연됐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오전 7시 40분쯤부터 2, 3호선 열차의 양방향 운행이 지연됐다”며 “3호선 운행은 8시 50분쯤, 2호선 운행은 9시 28분쯤 정상화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