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이 남은 방과후교실, 4명만이 살아 나오는데

입력
2022.04.23 10:00
17면
<83> 넷플릭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1980년대에 '청춘물의 셰익스피어'라고 잠깐 불리던 영화감독이 있었다. 존 휴즈의 '아직은 사랑을 몰라요(Sixteen candels, 1984)', '조찬클럽(The Breakfast Club, 1985)', '페리스의 해방(Ferris Bueller's Day Off, 1986)' 등 3편을 당시에 연달아 봤다면 청춘영화의 신천지를 만난 느낌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미국 고등학생의 보편적 정서와 느낌, 불안과 절망을 매우 예리하고도 유연하게 포착했다. 반항과 일탈만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심각하지만 사소한 흔들림까지 절묘하게 그려냈다. 당대의 청춘물 걸작으로 에이미 핵커링의 '리치몬드 연애소동(1982)', 프란시스 코폴라의 '아웃사이더(1983)', 톰 크루즈가 출연한 '위험한 청춘(1983)' 등이 있지만 존 휴즈의 청춘영화는 가볍게 전작들을 뛰어넘었다. 모범생에서 반항아까지 동세대라면 누구나 존 휴즈의 청춘영화에 공감했었다.

그러나 존 휴즈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1970, 80년대 대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머 잡지 '내셔널 램푼'의 작가로 시작했던 존 휴즈의 장기는 코미디였다. 사춘기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청춘영화 3부작은 걸작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청춘은 더 이상 존 휴즈의 것이 아니었다. 코미디영화 '자동차 대소동(1987)', '내 사랑 컬리 수(1992)' 등은 적당히 성공했고 심심한 평가를 받았다. '내 사랑 컬리 수' 이후 연출은 중단했지만, 존 휴즈는 히트작인 '나홀로 집에' 시리즈와 '베토벤', '101 달마시안', '플러버' 등의 제작과 각본을 맡아 2009년 사망할 때까지 안정적인 길을 걸었다.


세 편만으로 청춘영화의 거장이었던 존 휴즈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가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베이뷰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청춘 범죄물이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곳은, 방과 후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이 남아 있던 교실. 밖에서 잠깐 스트리킹 소동이 벌어져 선생이 나간 동안에, 사이먼이 물을 마시다 발작을 일으켜 사망한다. 땅콩 알레르기였다. 누군가 물에 땅콩 성분을 넣었고, 함께 있던 4명의 학생이 용의자가 된다. 예일대를 목표로 하는 모범생 브론윈, 메이저리그 진출을 원하는 투수 쿠퍼, 미모의 치어리더 애디, 마약을 파는 불량학생 네이트.

사이먼이 죽은, 방과 후 교실의 풍경은 존 휴즈의 '조찬클럽' 설정과 똑같다. 문제가정 출신의 불량학생, 동료를 괴롭히는 레슬링 선수, 성적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천재, 사치와 소비로 일관하는 부잣집 공주님,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상 행동을 하는 학생. 다섯 명은 수업시간에 문제를 일으켰고, 토요일 아침 학교에 오는 벌을 받는다. 전혀 다른 성격이고, 학교 안에서는 아무런 접점도 없었던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전 시간을 함께 보낸다. 농담도 하고, 싸우기도 하다가,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조찬클럽'을 보고 있으면, 1980년대 고등학생들의 초상이 일목요연하고 풍성하게 드러난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의 원작 소설을 쓴 캐런 M. 맥매너스는 분명히 영화 '조찬클럽'을 봤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조찬클럽'의 설정과 캐릭터를 가져와서, 자신의 스타일로 캐릭터와 소설의 도입부를 재창조했다. 표절이나 패러디가 아니라 헌정이고, 자신의 방식으로 담아낸 21세기 청소년의 풍성한 기록이다. 2017년 출간된 소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1년 이상 뉴욕타임스 영 어덜트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아마존 영 어덜트 스릴러 부문에서도 한동안 1위였다. 번역돼 37개국 이상에서 출간되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미국 10대의 풍경을 잘 그려낸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으며 시즌2 제작을 확정지었다.


방과 후에 남은 5명은 '조찬클럽'과 같은 우등생, 운동선수, 공주, 불량학생, 아웃사이더로 각각 10대의 대변자라 할 캐릭터다. 사이먼의 어머니는 야심적인 정치인이며, 시장이다. 사이먼은 자신이 속한 상류층의 위선을 멸시한다. 가장 친한 친구인 저네는 학교에서 왕따이며, 레즈비언이다. 사이먼은 가십 블로그 '어바웃댓'을 만들고, 같은 학교 학생들의 숨겨진 비밀을 폭로한다. 죽은 날 아침에도, 사이먼은 학교 최악의 거짓말쟁이들이 가진 비밀을 폭로할 것이라는 포스팅을 올린다. 사이먼이 죽을 때 함께 있었던 4명은, 비밀이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죽였을 것이라고 의심받는다.

브론윈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수학과 과학에는 재능이 없다. 성적이 오르지 않자 시험지를 미리 몰래 훔쳐봤다. 쿠퍼는 게이다. 만약 게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메이저리그 진출에 문제가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애디는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부유한 가정의 야구부 선수인 제이크와 열애 중이다. 제이크와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계급 상승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이크의 친구와 하룻밤 불장난을 했다. 네이트는 결손가정에서 아버지의 학대를 받았다. 마약을 팔다 한 번 더 걸리면 바로 교도소행이다. 네 명 모두 절박하다. 사이먼이 비밀을 폭로한다면, 그들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박살이 날 위기다. 사이먼이 죽은 후에도, '어바웃댓'에는 계속 글이 올라온다. 4명 중 하나가 사이먼의 컴퓨터를 가지고 가서 다른 사람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10대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성적, 진로, 연애, 섹스, 왕따, 부모와의 갈등, 가난 등등. 4명이 고민하는, 당면한 문제들도 그렇다. 어떻게든 위기에서 돌파하기 위해 그들은 또 다른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영리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새로운 화가 시작되면 한 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해결된다. 그러면서 한 명씩 과거와 현재를 설명해준다. 그는 어떤 사람이고,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사이먼이 죽은 후에도 비밀을 숨기고 서로를 비난하지만, 결국 4명은 신뢰하고 의지해야만 함을 알게 된다. 그들은 공동운명체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단순한 폭로나 수수께끼 풀이를 넘어 4명을 포함한 등장인물 모두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0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성장이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브론윈, 쿠퍼, 애디, 네이트가 서로를 신뢰하고, 저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잘 그려낸다. 사이먼의 폭로는 '개자식들의 실체를 걸러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10대들에게는 자신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게 했다. 4명은 심각한 고난을 겪으며 알게 된다. 악착같이 자신의 다른 면을 숨기려고 했다는 것을. 하지만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다른 면을 알게 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고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브론윈도, 쿠퍼도, 애디도, 네이트도 알게 된다. 그래서 홈커밍파티에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4명만이 즐겁게 춤추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믿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받아들여 다른 미래로 나아갈 것이니까.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