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방불케 한 소녀상 앞… 차도로 밀려난 수요시위

입력
2022.04.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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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 기자회견 도중 양쪽서 맞불 집회
보수단체 장소 선점에 밀려나 집회 개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수요시위)'를 방해하기 위한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가 계속되면서 자리를 잡지 못한 시위대가 차도로 밀려났다.

정의기억연대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2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수요시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수요시위가 보수단체의 자리 선점으로 그동안 집회를 열어왔던 장소에서 벗어나 차로에서 열리게 된 현실을 꼬집기 위해 개최됐다. 이날 열린 수요시위는 보수단체에서 소녀상 주변의 거의 모든 장소를 1순위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평화의 소녀상이 위치한 '평화로'에서 열리지 못할 뻔했다. 정의기억연대가 연합뉴스 건물 앞 차로를 집회 신고 장소로 정하면서 가까스로 수요시위가 이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최은영 목사는 "역사를 부정하는 단체와 개인이 평화적으로 진행하는 수요시위의 근간을 무너뜨리려 한다"며 "역사 부정 세력이 수요시위 현장 집회 신고를 선점하고 있는데도 공공기관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의기억연대가 이날 기자회견을 진행하자 양쪽에서 들려오는 맞불 집회 소리와 종로경찰서의 경고 방송이 뒤섞여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은 스피커를 기자회견 장소 쪽으로 틀어 "위안부는 사기"라는 취지로 발언했고, 자유연대 관계자는 차량 위로 올라가 기자회견장을 바라보며 거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집회 장소로 이동하자 보수단체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이날 수요시위로 차로가 통제돼 한 개 차로만 통행이 가능해지자, 주변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적극 대응 권고에도 경찰이 보수단체의 '기획 집회'를 방관하고 있다"며 종로경찰서 측에 항의하기도 했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어쩔 수 없이 차로에 집회 신고를 했는데 통행에 문제가 있어서 이 장소에서 집회를 계속하긴 어렵다"며 "경찰에서 집회 장소를 분할해 조정해줄 수도 있고, 허위신고도 제재해야 하는데 재량권을 행사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난감해하고 있다. 두 단체에서 같은 장소에 집회 신고를 했을 때 구역을 나눠서 선순위와 후순위 신고자 모두 집회를 열도록 조정할 수는 있지만, 장소도 협소하고 갈등의 소지가 커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서로 다른 구역에서 집회를 개최해도 갈등이 생기는데, 한 장소를 분할해 집회를 허용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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