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유럽은 계속해서 EU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슈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일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장의 소식을 글로벌 언론사들이 매일같이 보도할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통해 현지 주민들이 찍어 올린 다양한 동영상이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다. 하지만 전쟁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전쟁으로 인해 변화될 유럽의 흐름을 조망하는 고민과 분석은 오히려 줄어든 듯하다.
이번 사태로 유럽에서는 ‘분열의 움직임’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럽은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통해 분열과 갈등이 가져온 피해를 고스란히 체험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느낀 성찰을 바탕으로 통합을 위한 노력을 지난 세기 내내 지속해 왔다. EU와 유로존 체제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통합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한 군사적 통합 노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일부 유럽인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산업구조와 경제 상황에 놓여 있는 국가들이 하나의 경제 시스템 아래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설정이었는지를 깨닫게 만들었다. 거기다 최근 전개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NATO 가입을 희망했던 국가가 침략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 지역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큰 실망감을 갖게 만드는 듯하다.
사실 유럽은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분열의 흐름이 고조되어 왔다. 유럽 대륙 전체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 내부에서도 분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스페인을 꼽을 수 있다. 스페인 북서 지역에 놓인 카탈루냐는 경제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여타 스페인 지역과는 차이가 있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꼽힌다. 카탈루냐는 전체 인구의 16%(765만 명) 및 면적의 6.3%만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대표 산업인 자동차, 화학 분야 등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카탈루냐 지역 주민들이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희망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원래 이들 지역은 카탈루냐어를 사용해 왔다. 카탈루냐어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발렌시아 지방,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쓰이는 언어로 지리적으로 프랑스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프랑스어에 크게 영향을 받아 진화한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프랑스어와 동일시할 수는 없는 것이 스페인 등 타 언어권 발음이 섞여서 진화발전해 오면서 프랑스어와는 직접적으로 의사소통이 되기 힘든 구분된 측면이 많은 언어이다. 현재 유럽의 작은 독립국가 중 하나인 안도라공국에서는 카탈루냐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한다.
이처럼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구분된 지역인 카탈루냐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분리 독립 움직임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실시된 세 차례 카탈루냐 지방선거(2015.9월, 2017.12월, 2021.2월)에서 분리주의 성향의 정당들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등 카탈루냐 분리 독립 이슈화는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 10월 1일 실시된 카탈루냐 분리 독립 관련 주민투표의 경우, 스페인 중앙정부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경찰력을 동원하여 주민들의 투표 참여를 막았다. 하지만 카탈루냐 자치경찰의 협조로 카탈루냐 유권자 중 42%가 투표에 참여하고, 유효 투표 중 90.09%가 분리독립에 찬성했으나, 중앙정부의 투표 저지 과정에서 경찰 측과 투표자들 간 무력충돌이 발생, 8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2017년 10월 27일 카탈루냐 주의회는 ‘카탈루냐의 독립 선언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공식적으로 카탈루냐공화국 창건을 선포하였다. 이에 스페인 중앙정부는 위헌에 해당하는 조치라 하여 카탈루냐 자치정부 및 주의회를 해산하고, 카탈루냐 자치주 조기선거 실시를 선포하였다. 이와 함께 카탈루냐 주·부지사, 주장관, 주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중앙정부에서 주지사를 지명하였다. 당시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추진했던 정치 지도자들 중 일부인 주지사 및 전직 장관 4명은 벨기에로 도피하였으며, 스페인에 남아 있던 오리올 융케라스(Oriol Junqueras) 카탈루냐 전 부지사 및 전 주장관 등 10명의 분리독립 추진 정치인은 반역, 선동 혐의로 기소되었다. 현재 이들 정치인들은 선동죄 및 횡령죄를 적용받아 9~13년형이라는 중형이 내려져 복역 중인 상태이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흐름을 이처럼 강경하게 봉합하려 시도했으나, 결과는 의외의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2017년 12월 실시된 카탈루냐 조기 선거에서 중앙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재차 분리주의 정당들이 과반을 획득하고, 카탈루냐 주의회는 해외에 있는 푸지데몬 전 주지사를 대신하여 분리독립 강경파인 킴 토라(Quim Torra)를 주지사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선거로 당선된 토라 주지사는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의 유효성을 지속 주장하는 한편, 구속된 분리독립 추진 정치인 석방과 함께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주민투표 재실시를 요구하였다.
현재도 카탈루냐 지역의 분리독립 이슈는 해결되지 않는 상태이다. 현재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 투자 확대, 주민 복지 증진 등을 제시하고, 카탈루냐 측과 대화를 지속하려는 노력 속에서 카탈루냐 분리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 자체를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카탈루냐 주의회 및 주정부는 스페인 중앙정부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구속력 있는 주민투표 실시 결과에 따라 카탈루냐 자결권 여부를 결정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2021년 2월 실시된 카탈루냐 주의회 선거에서도 카탈루냐 분리독립 지지 성향 정당들이 전체 135석 중 74석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였다.
스페인의 또 다른 지역인 바스크 지방의 분리독립에 대한 요구는 그 역사가 훨씬 오래되었다. 바스크 지역의 분리독립을 희망하는 정당인 바스크민족주의당(PNV)은 1895년 창당한 정당이다. 분리독립을 희망한 정당의 역사만 보더라도 이들 지역은 여타 스페인 지역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기질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일부 수용하여 스페인 역시 그간 바스크 지역의 경우에는 여타 지자체와는 달리 경제협정(Concierto Económico) 및 경제협약(Convenio Económico)이라는 시스템에 기반한 일정 부분 자율적 조세·재정 시스템을 용인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바스크 지역은 수입관세, 특별세 및 부가가치세 수입에 대한 부과금(일정 금액을 분담금의 형태로 국가에 지불)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 세금을 직접 징수하고 관리해 왔다.
하지만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바스크 주민들의 요구는 계속되어 온 듯하다. 2004년 바스크 주정부가 제출한 주민투표를 통해 주의 미래에 대한 자결권을 갖는다는 제안은 주의회에서는 안건으로 통과되었으나 스페인 정부는 헌법 위배를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인 2005년 바스크 지방선거에서 집권 바스크민족주의당(PNV)이 승리했으나 독립을 지지하기 위한 표는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2018년 바스크 지역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던 무장단체는 공식적으로 해산한 상태이다.
분리독립의 움직임은 비단 스페인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북부 지역의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가 대표적이다. 롬바르디아주에는 북부 중심 도시 밀라노가 속해 있고, 베네토주에는 관광 도시 베네치아가 포함된 지역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에 해당한다. 이들 두 지역은 지난 2017년 주민투표를 통해 해당 지방정부가 재정, 교육, 환경 등에 대해서 더욱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95%의 압도적인 비율로 찬성 의견이 나왔다. 당시 이러한 주민투표 결과를 유도한 정당은 ‘이탈리아 북부동맹(LN)’으로 해당 정당은 이탈리아 북부 및 중부 지역에 속한 14개 주를 ‘파다니아’라는 국가로 분리하거나 적어도 이탈리아 연방국가로 전환하여 북부지역의 자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동한 정당이다.
벨기에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벨기에는 크게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의 플랑드르와 프랑스어를 쓰는 남부의 왈롱 지방으로 구분된다. 이 중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플랑드르 지역을 중심으로 분리독립에 대한 요구가 높은 상황이다. 플랑드르 지방은 1100만 벨기에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데다 압도적인 경제력을 갖고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은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 내 여러 국가들의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도 통합을 추구하며 진화해 왔다. 하지만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정 국가 내부에서도 여러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 국가들은 자국 내에 문화적, 경제적 차별성이 높은 지자체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자치권을 부여하며 평화로운 공존을 시도해 왔다. 어찌 보면 지금의 유럽은 이들 지자체들의 암묵적 협조와 중앙정부로 하여금 자치권 부여라는 배려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호 간의 합의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어느 곳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