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미사일 도발을 재개했다. 지난달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모라토리엄(발사 유예)을 파기한 지 23일 만이다. 무기의 위력은 작았으나 의미는 남다르다. 당장 18일 개시되는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에 맞춘 정면 대응 선언으로 읽힌다. 도발 예행연습에 들어간 만큼 북한은 ICBM 추가 발사와 7차 핵실험 등 ‘고강도 무력시위’를 향해 달려갈 게 분명하다. 내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등 북한이 도발 명분으로 삼을 만한 구실도 즐비하다. 한반도 ‘강 대 강’ 대결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17일 “전날 오후 6시쯤 북한이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두 발의 발사체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고도와 사거리는 각각 약 25㎞, 110㎞로 탐지됐다. 군 당국은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소형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전술핵운용의 효과성과 화력임무의 다각화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북측의 설명에도 성능은 그간 북한이 쏘아 올린 각종 미사일과 비교해 한참 떨어진다. 보다 주목할 부분은 ‘4월 첫 도발’에 담긴 무게감이다. 북한은 발사 전날 대규모 열병식을 생략한 김일성 생일(태양절) 110주년 행사를 마쳤다. 18일엔 한미연합지휘소훈련(CCPT)도 예정돼 있다. 군사행동 재개에 필요한 대내외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북한이 적대시 정책으로 규정한 한미훈련은 최적의 도발 소재다. 실제 북한 선전매체들은 미사일 발사와 동시에 한미훈련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불을 즐기는 자 불에 타죽기 마련(우리민족끼리)” 등 위협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궁극적으로 북한의 시선은 다음 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 있다.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언급하고, 외신 인터뷰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못 박는 등 강경 대북정책을 표방한 윤 당선인에게 줄 타격을 극대화할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방법은 사실상 정해졌다. 앞서 5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에서 ‘핵전투 무력’을 꺼내든 데 이어, 전날 미사일 발사현장을 지휘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핵전투무력을 한층 강화하는 데 대한 강령적 가르침을 줬다”고 했다. 어떻게든 핵을 활용해 한반도 정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중이 드러난다.
관심은 고강도 도발의 ‘디데이’가 언제냐다. 이번에 성능 낮은 미사일을 쏜 것도 압도적 무력을 한 방에 터뜨리기 위한 ‘시간 벌기’ 성격이 짙다. 북한은 현재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를 복구하는 중이다. 갱도 측면을 파들어가 새 길을 내는 방식인데, 한미 정보당국은 작업이 끝나려면 한 달 정도의 추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갱도 복구는 윤 당선인 취임일 즈음인 내달 초중순을 목표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직후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열릴 가능성도 크다. 종합하면 북한은 남측 정부 교체기와 한미정상의 만남을 종착역으로 삼고 간헐적 미사일 발사를 지속하는, ‘도발 스케줄’을 따를 것으로 점쳐진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단거리미사일 발사로 전술핵능력을 제고하면서 한미 압박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회의를 열었고, 이날도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를 개최해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하지만 18일 한국을 찾는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한국 측과 북한 도발에 대비해 제재 등 구체적 대응카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마지막 방한에서 종전선언 등 대북 대화 방안이 논의된 것과 비교해 6개월 만에 한미의 기조가 강경 대응으로 바뀌면서 한반도 위기지수는 계속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