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은 무조건 안마사? "보육교사도, 사무직도 할 수 있습니다"

입력
2022.04.20 14:00
[4·20 장애인의 날 릴레이 인터뷰]
<4>시각장애인 이혜정씨의 직장 생활
서울 노원구 어르신 돌봄 지원센터 근무
보육교사 거쳐 노인복지센터 설립 꿈꿔
"장애인 직장인 위한 친화적 여건 필수"

시각장애인의 직업으로 흔히 떠오르는 게 ‘안마사'다.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 훈련도 안마사 계열에 뿌리를 두고 물리치료실 운영, 안마 창업, 피부 미용 등에 한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혜정(51)씨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 어머니는 늘 "장애를 이유로 직업이나 배움에 한계를 두지 말라"며 독려했다. 지금은 서울 노원구 어르신 돌봄 지원 센터에서 약 1년 6개월째 일반 사무직 생활지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씨는 선천적으로 망막색소변성이라는 희소병을 가져 눈앞 가까운 사물만 겨우 인식할 수 있다. 그런 이씨에게 '일이 적성에 맞느냐'고 묻자 야무진 답변이 돌아왔다. “어르신 돌봄 센터를 직접 세우는 게 제 최종 목표인 걸요.”

이씨와 20년 절친이자 이씨의 활동지원사인 백진(52)씨는 “(이씨가) 젊을 땐 어린이집을 하더니, 사업가 기질이 분명히 있다”고 맞장구쳤다. 이에 이씨는 “제가 우스갯소리로 종종 하는 말인데,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겁도 없는 거예요”라고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한 몸 같은 활동지원사와 출・퇴근, 업무도 함께

지난 15일 오전 11시 30분, 출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이씨 집에 백씨가 도착했다. 백씨는 이씨가 탁자에 준비해 둔 아이라이너를 집어 들고 순식간에 이씨 눈에 아이라인을 그려 줬다. 간단한 화장이 끝나자 각자 능숙하게 외출에 나섰다. 이씨는 신발을 신었고 백씨는 현관문 열쇠를 돌려 잠가 챙겼다.

이씨는 곧바로 백씨의 왼쪽 팔에 익숙하게 오른손을 올려놓고 걷기 시작했다. 도봉역에서 1호선을 타고 창동역에서 내려 4호선으로 환승해 노원역에 내려 센터까지 걸어가는 30~40분 여정이다. 한 몸처럼 움직이는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이씨는 "(백씨의) 발걸음에 맞춰 반 보 늦게 걸으면 넘어질 일이 없다"고 귀띔했다.


시각장애인이 사무직 업무를 해내는 데 지장은 없을까. 이씨는 “근로지원인과 함께라면 못할 게 없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이씨는 센터 내에서 맞춤돌봄팀과 재가팀 사이에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일을 담당한다.

저시력자용 확대경을 통해 기본적인 서류 입력은 물론 센터 앞으로 후원금이 들어오면 정리해 다른 생활지원사들이 노인들에게 배부할 수 있게 돕는다. 센스리더(모니터 상 글자나 그림을 음성이나 점자로 읽어주는 프로그램)를 이용하기 때문에 업무가 어렵진 않지만 가끔 이씨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 땐 백씨가 옆에서 보완한다.

생활지원사 한 명당 노인 한 명을 맡아 관리하는데 이씨 역시 예외 없이 노인 한 명을 담당하고 있다. 이씨는 매주 월요일 백씨와 함께 해당 노인 가정에 방문하고 수, 금요일에는 안부 전화를 하는 등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정 방문 시 문자메시지를 읽어드리거나 현관문 배터리를 교체하는 등 시각장애인이 할 수 없는 일은 백씨가 담당하고, 말벗이 되고 생활 고충을 접수하는 일은 이씨가 맡는다.

백씨는 이씨의 활동지원사이자 근로지원인이기도 하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보건복지부에서 시행 중인 장애인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이씨와 같은 중증 장애인이 생활할 수 있도록 외출 동행, 가사 도움, 간호, 진료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이씨는 활동지원사 몇 명을 겪은 후 함께 지내기 가장 편한 백씨에게 활동지원사를 부탁했다. 백씨는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고 활동지원사로서 10년째 이씨 곁을 지키고 있다.

'장애인 근로지원인'은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지원하는 인력으로, 중증 장애인이 담당 업무 능력을 갖췄지만 장애로 인해 특정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때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일을 시작하면서 근로지원인이 필요해진 이씨는 이번에도 센터에 양해를 구해 근로지원인으로 백씨를 신청했다.

센터 최초 중증장애인 채용... “동료들이 도움”

노원구 어르신 돌봄지원 센터는 지난해 ‘중증장애인도 일반 내근 사무직으로 일하게 해보자'는 취지를 살려 이씨를 채용했다. 백씨는 “센터에서 그간 다리를 저는 정도의 경증 지체 장애인이 외근직으로 근무하는 경우는 몇 명 있었지만 이씨 같이 중증장애인이 내근직으로 일하는 건 해당 센터의 첫 사례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쉬울 순 없었다. 이씨는 “시각장애인은 이쪽 방향에는 무슨 물건이 있고, 어디로 얼마큼 가면 뭐가 나오는지 파악해둔 것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정한 동선이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며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사무실이라 처음에는 동선이 꼬일 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센터 특성상 직원 대부분이 사회복지사인지라 장애 친화적인 환경이 금세 조성됐다. 센터 동료들은 이씨 상황을 이해하고 이씨의 동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배려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내가 챙기러 가야 할 서류를 누군가가 바로 내 자리로 가져다주는 등 나로선 어려울 법한 동선을 동료들이 단축해 준 덕분에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씨의 늦은 출근 시간 역시 센터가 이씨 상황을 고려한 결과다. 다른 생활지원사들은 낮 12시30분에 출근해 점심을 먹고 업무를 시작한다. 그러나 매 점심 시간마다 바깥의 식당으로 다니기 어려운 이씨는 이른 점심을 먼저 먹고 출근 할 수 있도록 오후 1시까지로 출근 시간이 조정됐다. 덕분에 이씨는 점심 시간과 바쁜 출근에 대한 부담 모두를 덜게 됐다.

선생님이 되고 싶던 20대, 센터 설립 꿈꾸는 지금

이혜정씨는 성인이 된 후 곧장 보습학원을 찾아가 유치부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적성에 맞다는 걸 깨닫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고 작은 놀이방을 창업해 동네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로 인해 첫 창업은 일찍 접어야 했지만 이씨는 굴하지 않고 30대에 또 어린이집을 열어 약 10년간 운영했다.

장애인인 데다 미혼인 여성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처음부터 달가워하는 학부모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씨는 보육에 대한 열정으로 당시 학부모들이 원하는 게 뭔지 연구했다. 이씨는 “그때만 해도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 서비스가 많지 않았다”며 “기본적인 어린이집 역할뿐만 아니라 아픈 아이 병원에 데려다 주기, 퇴근 시간 이후까지 아이 봐주기, 홈메이드 간식 만들어 먹이기 등 일하는 엄마들이 해줄 수 없는 소소한 것까지 케어하면서 신뢰를 쌓았다"고 밝혔다.

수년 새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어린이집 운영이 어려워졌을 때도 이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씨는 어린이집 문을 닫고 사이버 대학에 진학해 4년간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이제는 노인 돌봄 인력이 절실하다는 발상 때문이었다. 평생을 사회복지 서비스 이용자로만 살았으니 이제는 제공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다.

사회복지 공부를 마치고 '준비된' 이씨에게 결국 기회는 찾아왔다. 평소 알고 지냈던 노원구 시각장애인 복지관 관계자로부터 현재 일하는 센터에서 중증장애인 채용을 진행한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다.

이씨는 "어르신을 만나러 가는 것도 좋고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며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단절된 사회에 유독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활동지원사로만 일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복지센터를 직접 세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애인의 적극 의지, 실현 가능한 사회 여건 필요”

이처럼 평생에 걸쳐 자신이 원하는 직업과 사회적 역할을 계속 찾아온 이씨의 원동력은 ‘내가 직접 찾지 않으면 아무도 찾아 주지 않더라’는 뼈아픈 경험에서 나왔다.

이씨는 "어머니께서 장애인 제도를 잘 모르셔서 난 28세가 돼서야 장애 등급을 받았다"며 "그제야 장애인 관련 협회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특히 한국저시력인협회 미영순 회장이 나와 비슷한 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가 생각난다"며 "나같은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직접 찾아다니고서야 많은 걸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삶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현실에 공감하면서도 적극적인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장애는 평생 갖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극복할 수 없다"며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뭔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복지관이나 협회 정보는 어떤 게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장애라는 게 소극적 태도를 만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나밖에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의 범위를 넓히려면 이를 실현 가능하게 할 사회적 여건이 선행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씨가 일하는 센터와 달리, 장애 친화적인 분위기 조성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기업들의 경우 여전히 장애인이 일원이 되기 어렵다는 게 이씨의 지적이다.

이씨는 “장애인 고용을 강제하는 할당 정책, 장려금 제도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일하려면 업무 환경 자체가 장애 친화적이어야 한다”며 “아무리 청각장애인을 고용한 대도 조직에 수어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듯이, 장애인이 당장 조직원이 돼도 문제가 없도록 실질적인 환경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