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대신 불꽃놀이 수놓은 평양... 북한, '태양절 열병식' 건너뛴 이유는?

입력
2022.04.15 20:00
이미 ICBM 발사로 '정점' 찍어 숨고르기
25일 '건군절'에 초점... 정세 긴장 높일 듯

평양의 밤은 화려했다. 육중한 미사일 대신 불꽃놀이가 광장을 수놓았고, 딱딱한 군 사열의 빈자리는 활기찬 공연으로 채웠다. 북한이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110주년을 맞아 연 경축 행사에서 대규모 ‘열병식’은 없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깜짝 선보이며 군사력을 한껏 과시했던 과거 태양절과 달라진 풍경이다. 한미는 7차 핵실험 등 북한의 고강도 도발을 기정사실화한 상황. 축제 열기를 이어가 민심을 하나로 모은 뒤 도발 축포를 쏘겠다는 노림수가 숨어 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태양절 경축 청년 학생들의 야회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탄생 110돌 경축 대공연 ‘영원한 태양의 노래’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북한 당국은 대공연이 끝난 뒤 주체사상탑을 중심으로 대동강변에서 태양절 경축 축포(불꽃놀이)도 진행했다.

잔치는 성대했으나 열병식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태양절 100주년(2012년)과 105주년(2017년)에 어김없이 등장했던 신형 ICBM 등 무기체계는 자취를 감췄다. 올해도 북한이 각별히 여기는 ‘정주년(5ㆍ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이라 과거에 버금가는 위력을 선보일 것이라는 관측을 무색하게 하는 행보다.

북한은 왜 태양절 열병식을 건너뛰었을까. 지난달 25일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한 ICBM 발사로 모라토리엄(발사 유예)을 깨는 등 무력시위의 ‘정점’을 찍은 만큼 굳이 열병식이 급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화려한 볼거리로 장기 국경봉쇄에 따른 생활고에 지쳐 있던 주민들을 위로해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꾀하려는 의도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과 남측 정권교체기인 4, 5월을 겨냥한 추가 도발을 예고한 터라 대외정책에만 주력한다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셈법이다.

대북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달 중 추가 미사일 도발로 대미ㆍ대남 압박 수위를 차츰 높인 뒤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건군절) 90주년을 열병식 ‘디데이’로 잡고 무력시위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 최근 김일성광장과 미림비행장 일대에서는 수만 명의 병력이 동원된 열병식 준비 동향이 꾸준히 포착됐다. 핵실험 등 다른 도발 움직임도 계속 감지되고 있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이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 분석 결과, 3번 갱도 입구의 토사 더미가 더 커졌다고 전했다. 굴착 작업이 진척됐다는 뜻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언제 무력시위를 감행하든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며 “7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 감행 전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정세 긴장감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