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이 왔다. 어이없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식량이 부족해 폭동이 일어나도, 다른 한쪽에서는 오랜만에 나선 벚꽃놀이 사진이 차고 넘쳤고, 우리 동네에는 언제쯤 피려나 몇 번이고 올려다보며 설렜다. 먼 어둠은 상관없다는 듯 지나치게 찬란한 꽃송이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이탈리아로 가는 국적기도 두세 달 후면 다시 뜬다는 기사다. 로마로 밀라노로 바로 가는 비행기를 가득 채우던 사람들을 곧 다시 볼 모양이다. 로마공항의 또 다른 이름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라는 것도, 공항라운지에서 사람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조형물이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였단 것도 새삼 생각이 났다. 이탈리아의 도시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자랑스레 내세우는 이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어난 날이 바로 오늘 4월 15일이다.
1400년대에 태어난 이들 중에 정확한 탄생날짜가 남겨져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피렌체의 유명한 공증인이었던 아버지가 서류에 꼼꼼하게 적어 놓은 덕이라는데, 혼외자였던 그를 마지못해 떠맡은 아버지는 기록상 생일을 남겨줬을 뿐 그의 천재성까지 알아보지는 못했다. 조국인 피렌체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부르는 '다빈치'는 피렌체 인근의 작은 마을 '빈치' 출신이라는 뜻인데, 정작 그의 예술세계가 활짝 꽃핀 건 피렌체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밀라노에서였다.
밀라노대성당 주변을 걸을 때면 피렌체를 떠나와 새로운 기회를 엿보던 서른 살의 다빈치가 떠오른다. 밀라노공국의 주인인 조카자리를 빼앗아 섭정을 하던 루도비코는 떳떳하지 못한 처지를 가리려 이런저런 큰 공사를 벌였는데, 밀라노대성당을 화려하게 채우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다빈치도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기회였다. 루도비코가 사랑하는 여인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흰 담비를 안은 여인의 초상'으로 군주의 시선을 사로잡더니, 오늘날의 대형뮤지컬과도 맞먹을 만한 기획으로 밤하늘을 재현한 결혼식 축하공연으로 확실한 인정까지 받았다.
이미 500년 전에 비행기나 잠수복을 떠올리고 설계한 천재였기에, 토목에서부터 군사기술까지 당시로선 헛소리라고 치부할 만한 기상천외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주는 루도비코는 최고의 후원자였다. 돈에 쫓기지 말고 연구에 몰두하라고 포도밭도 내주었는데, 다빈치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바로 근처다.
어떤 날은 밤낮을 잊고 그림에 매달리다가 또 어떤 날은 며칠이고 바라만 보다 한두 줄 색을 더하곤 했다는데, 이제는 흐릿해진 '최후의 만찬' 벽화 하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먼 길을 마다 않고 밀라노를 찾는다. 라틴어로 제자리라는 뜻인 '인 시투(IN SITU)', 원래의 현장이라는 영원한 매력을 밀라노에 남긴 것이다.
어떤 사람을 어떤 자리에 쓸 것인가로 시끄러운 날들이다. 대자연 앞에서 참으로 미미한 인간의 힘에 절망하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사람 하나가 가진 힘이 세상을 바꾸는 걸 보기도 한다. 밀라노를 말하는 또 하나의 대명사가 된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의 이름을 크게 불러 제대로 쓰이게 한 500년 전 밀라노 사람의 안목과 지혜를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가지고 있을까.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 사람을 바로 쓰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다시 생각하는 그의 생일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