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관성이 있어 멈추기를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불멸을 꿈꾸며, 그래서 죽음을 거세게 거부한다. 성서의 지혜 문헌 곳곳에서 들리는 나지막하고 음산한 배경음악은, 이 불가피한 죽음이 자아내는 것이다.
자기 의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눈을 떠보니 인생을 덜렁 부여받았다. 하지만 생명은 의지 확고하다. 욕망과 야망으로 우리의 젊음을 불끈거리게 하고, 세상이 주는 그 대가는 달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인생은 성적표가 무용지물이다. 99점 인생도 20점 인생도 결국에는 같은 보상을 받는다. 죽음이다. 자기의 자랑 어느 것도 못 가져간다.
주어진 생명을 그렇게나 불태우고 공적을 남기면, 부여받은 인생이 조금 더 연장되면 안 될까? 아낌없이 헌신했던 그 젊음을 조금 더 붙들 수는 없을까? 세상은 나에게 부와 명예로 보상해 주지만 생명은 조금의 에누리도 없다. 사그라지기 시작하면 저지할 방도가 없다. 원수도 영웅도 죽기는 마찬가지, 한량도 군신도 다름없이 죽는다.
그래서 늙는 것은 다행이다. 노년기 없이 일정 시간이 지나 갑자기 생명의 스위치가 꺼진다면 얼마나 죽음이 황망할까? 그런데 우리는 노화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욕구도 야망도 사그라든다. 늙는 것은 욕심을 버리라는 자연의 다정한 배려다. 늙어야 인생을 관조하며 허욕을 다스릴 수 있다. 늙으면 이런 자조를 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여건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마련된다. 늙는 것은 욕심과 야망이 빚는 갈등에서 드디어 벗어나게 되는 창조주의 선물이다.
사람이 태어나 의욕 넘치게 살아야 할 시기도 있지만, 늙어 죽음을 향해 갈 때는 삼가고 자중하는 격이 필요하다. 그래서 늙어서도 욕심이 많으면 추해 보인다. 그런 추한 마음을 전도서는 이렇게 전한다.
결국 늙어서도 욕심을 부리면 억울하고 실망뿐이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삶을 관조하는 시기를 주었다. 그 시기는 인생의 쾌락과 욕구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야 할 시기다. 마지막에 걸어야 할 그 길은 누구에게든지 한 길뿐이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그 길 걷기를 잘 준비하자. 우리의 운명은 이와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