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자국 정치인들의 키이우행(行)을 막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전히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 등 경제적으로 긴밀한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유럽 최대 경제 강국 수장인 그가 우크라이나를 지지 방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는 독일 타블로이드 빌트를 인용,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려던 독일 정치인들이 총리실의 압박과 지연 전술에 직면한 상태”라고 전했다. 빌트는 독일 최대 미디어그룹인 악셀슈프링어그룹이 보유한 대중지다.
최근 일부 독일 국회의원들이 우크라이나 연대 의사 표명을 위해 키이우 방문을 검토하고 있지만, 숄츠 총리의 거센 반대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엄포를 뚫고 어렵사리 국경을 넘었던 비올라 크라몬 녹색당 의원은 “키이우를 가는 데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저항을 극복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숄츠 총리가 정치인들의 우크라이나행에 수세적 입장을 보이는 것은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으로 보인다. 빌트는 “정치인들의 우크라이나 지지 방문이 독일과 러시아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독일은 러시아를 향한 서방 제재의 ‘약한 고리’로 지목돼 왔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독일은 최근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석탄 수입 금지에는 합의했지만, 러시아 경제에 ‘결정타’가 될 원유와 가스 제재를 두고는 “가능하지 않다”고 못 박기도 했다. 숄츠 총리 역시 대러 제재는 물론 러시아 비판에 미온적이다. 프랑스와 영국 등 주요국 정상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만행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며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는 와중에도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직접 “독일은 우리에게 냉정하고 소극적인 모습으로 머물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다.
그런 숄츠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방문’ 압박은 또 다른 정치적 고민거리가 됐다. 전통의 군사 강국이자 유럽 경제 대국 수장인 그가 직접 전장을 방문해 독일의 우크라이나 지지 의사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커진 까닭이다. 그간 소수의 주장에 그쳤지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8일)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9일) 등이 잇따라 키이우를 방문, 우크라이나 지원 사격에 나서면서 안팎에서도 등 떠미는 움직임이 거세졌다는 게 텔레그래프의 설명이다.
일단 숄츠 총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신 그가 속한 사회민주당이 감싸고 나섰다. 사민당 원로인 랄프 슈테그너 의원은 최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숄츠 총리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많은 통화를 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