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에 도전하는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와 대권을 놓고 5년 만에 결선투표에서 재대결을 펼치게 됐다. 마크롱 대통령이 압도한 이전 결선투표와 달리 이번엔 박빙 승부가 예상된다.
10일(현지시간) 프랑스 내무부의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개표 결과, 마크롱 대통령이 27.8%, 르펜 후보가 23.1%를 기록했다. 극좌 성향인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후보가 득표율 21.9%로 3위, 극우 성향인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 후보가 7%로 4위를 각각 차지했다. 1차 투표 결과만 놓고 보면 프랑스 사회 양극화로 인한 정치의 재구성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극우ㆍ극좌 후보가 모두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다만 이변 없이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가 24일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됐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는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득표율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승자를 가린다.
2주 뒤 치러지는 결선투표에서도 박빙 승부가 예고됐다. 앞서 8일 발표된 양자대결을 가정한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의 여론조사 결과, 마크롱 대통령을 뽑겠다는 응답은 52%로 르펜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48%)보다 겨우 4%포인트 높았다. 다른 여론조사기관들도 마크롱 대통령의 소폭 우세를 예측했는데, 일부 여론조사 결과는 오차범위 이내여서 재선을 장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지지율 격차는 지난 대선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17년 결선 투표에서는 마크롱 대통령(66.1%)이 르펜 후보(33.9%)를 압도했었다.
두 후보의 격차가 크게 좁혀진 데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최대 변수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전쟁을 중재하려는 외교에 집중해왔다. 그 사이 르펜 후보는 물가상승 억제 등 '생활밀착형' 공약에 집중해 불황을 겪는 민심을 파고들었다. 전쟁 초기 두 후보 간 16%포인트 넘는 지지율 격차는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시나브로 좁혀졌다.
대선 결선 투표에서 극우 집권을 막기 위해 표 결집이 이뤄지는 프랑스 전통인 ‘공화전선’도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5년 전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던 멜랑숑 후보 캠프 관계자는 이날 “이번 결선 투표에서는 기권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AFP통신은 그의 중앙집중형 리더십과 거친 성격이 대중에게 오만방자한 대통령으로 각인돼 이번 대선에서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을 가리켜 "게으름뱅이들(slackers)"이라고 하는가 하면, 실직자에게 "길 건너 봐, 그럼 일자리 구할 수 있다"고 말해 대중의 분노를 샀다.
만일 결선투표에서 르펜 후보가 당선되면 유럽에서 프랑스 역할의 대변화가 예상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르펜 후보가 승리하면 러시아에 대항하는 서방 연합은 불안정해지고, 유럽의 주요 강국으로서 프랑스의 역할은 뒤집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르펜 후보는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을 드러낸 바 있다. 다만 여전히 마크롱 대통령이 우세한 것으로 평가돼,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 대통령이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