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 지역 해방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대비해 방어무기를 타깃으로 공격을 단행했다. 하르키우와 마리우폴 등 동부 전역엔 폭격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총공격이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대공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S-300을 러시아군이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폭격 장소를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드니프로라고 밝히면서 “외곽 격납고에 숨겨져 있던 S-300 발사대 4기를 해상에서 발사한 갈리브르 미사일로 파괴했고, 우크라이나군 25명이 이 공격으로 피격됐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러시아의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S-300은 최근 슬로바키아가 제공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러시아군은 또 동부 하르키우주(州) 이지움 인근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전투기 Su-25 2기를 격추하고 미콜라이우 등에 위치한 탄약고 2곳도 파괴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주요 병참 기지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타깃으로 미사일 공격을 단행한 것은 동부 돈바스 지역을 향한 총공격을 앞두고 우크라이나군의 방어 체계를 무너뜨리고, 군의 사기를 꺾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군이 이지움과 도네츠크주 슬로뱐스크 축을 따라 작전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동부 지역의 민간인 사상자도 계속 늘고 있다. 지난 주말 동안 제2 도시 하르키우 주변에선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최소 12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군사전문가인 마리아 아데바는 “사망자 가운데는 7세 어린이가 포함됐다”며 “러시아군이 새로운 타입의 폭탄을 사용하고 있는데 한밤중에 낙하산에 매달려 투하돼 폭탄이 날아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한층 위험하다"고 BBC에 말했다. 러시아는 하르키우의 외곽 지역 대부분을 수중에 넣고 한 달 넘게 포격을 퍼붓고, 시가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8일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에 가해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57명, 부상자는 109명으로 늘어났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서 백린탄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러시아군의 계속된 재래식 비유도탄 사용으로 민간인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앞서 부차 등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러시아군 점령지역에서 지금까지 1,222구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다고 이날 밝혔다. 유엔은 지금까지 민간인 1,793명이 사망하고 2,439명이 부상했다고 집계했지만,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동부 마리우폴에서만 1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서방 정보당국은 조만간 동부지역을 향한 러시아군의 총 공세를 예고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은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의 "대대적인 돌파구" 마련을 위해 동부에 화력을 집중해 "엄청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바딤 데니센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은 이날 “러시아군은 계속 군대와 장비를 도네츠그와 루한스크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동시에 폭격하고 있다”며 “이미 돈바스 지역을 향한 공격은 시작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도 격전을 앞두고 전의를 다지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전날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든 우리도 우리만의 계획이 있다"며 "이 계획은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고, 우리 영토를 자유화할 거라는 확신에 기반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