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2배 돼도 대기업 납품가는 그대로... '벼랑끝' 중기, "윤 대통령 나서달라"

입력
2022.04.11 20:30
11면
골조업계, 12일 2차 셧다운 돌입 예정
"적자규모, 더 이상 감당 못 할 수준…
새 정부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해야"

#. 철근·콘크리트 골조업체 A사는 최근 1년 새,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급등한 원자재 가격에 적자 규모가 계약 금액의 20%까지 누적됐다. '한 달만 적자가 더 쌓이면 도산하겠다'는 위기감을 느낀 A사는 원청사에 1차 셧다운을 예고하며 납품단가 조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원청사는 "납품단가 조정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답했고, A사는 원청의 약속을 믿고 공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대다수의 원청업체는 사흘 전 A사 등 골조업체에 "물가변동에 의한 하도급 대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A사와 같이 '납품단가 조절'을 거부당한 골조업체들은 "원자재값 폭등과 대기업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며 피켓을 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의 여파가 중소기업에 불어닥쳤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중소기업들은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시급하다며 새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1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 등의 납품단가 미반영으로 현장의 피해가 극심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기자회견에는 중기중앙회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한국창호커튼월협회와 전국철근콘크리트연합회 등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포함한 18개 단체가 참여했다.

원자재 가격 인상은 지난해부터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발생하며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다시피 하자, 대다수 뿌리산업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존폐 기로에 놓였다. 중기중앙회가 지난달 28~31일 중소기업 304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제품 공급원가 중 원자재 비용은 58.6%에 달했지만, 원자잿값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전부 반영받는 중소기업은 4.6%에 불과했다. 응답기업의 49.2%는 "납품단가 인상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으로 지난해 경영여건이 전년보다 악화됐다고 답한 기업은 99.4%에 달했다.

"납품중단 불사" 다수업체, 이미 셧다운

버틸 여력이 얼마 남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납품 중단'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성진 청송건설 대표는 "치솟고 있는 건설자재비를 반영해주지 않으면 현장 셧다운이나 폐업이 불가피하다"며 "그조차 버티지 못한 전국 30여 곳의 골조업체는 이미 셧다운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현장 1곳에만 적자가 5억~20억 원씩 누적돼 있는데, 현장을 5곳 이상 맡은 업체는 적자 규모가 25억 원에 달해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철근·콘크리트업종 협의회는 12일 대전에서 전국 5개 권역별 모임을 열고 2차 셧다운에 돌입할 예정이다.

계약기간이 3년 이상으로 장기간인 창호커튼업계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유병조 창호커튼월협회 회장은 "최근 창호커튼월 소재인 알루미늄 가격이 2배가량 폭등해 업체들이 엄청난 손실을 떠안고 있다"며 "공급원가가 100원이면 알루미늄 등 원자재가 60원을 차지해 현재 자재비도 못 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들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납품단가 현실화"라고 강조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0.3%의 대기업이 전체 영업이익의 57%를 가져가고, 99%의 중소기업이 25%를 가져가는 상황"이라며 "고질적이고 근본적인 납품단가 문제 해결을 위해 새 정부에서 반드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과 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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