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놀이에 진심인 민족... '상춘'의 역사를 돌아보다

입력
2022.04.09 18:00
일제강점기 '창경원 밤벚꽃놀이'가 시초
팬데믹 때도 드라이브 스루・비대면 상춘 이어져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본격적인 벚꽃놀이가 시작됐다. 서울 여의도 여의서로은 벚꽃길 개방을 하루 앞둔 8일 오후부터 상춘객들로 가득했다. 같은 날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에도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거나 산책을 하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공식적인 봄꽃 축제는 아직 조심스러운 시기, 하지만 봄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일상의 회복을 알리는 '상춘'의 귀환을 계기로 벚꽃놀이의 역사를 사진으로 되돌아 본다.



벚꽃놀이가 국민적 축제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 창경원(현 창경궁)에서 '밤 벚꽃놀이’가 열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상춘객들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창경궁을 찾아 수은등 불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꽃송이를 구경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야간 벚꽃놀이는 6·25전쟁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1952년 4월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매년 벚꽃놀이가 열리는 시기면 상춘객 규모나 쓰레기의 양, 각종 범죄사범, 실종 아동 등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핫이슈'였다. 1972년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한 달간 열린 축제에 1백25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고 이로 인해 쌓인 쓰레기가 4t트럭으로 4백여 대분, 빈 병만 50만여 개가 나왔다.

1980년대 들어 창경궁 복원 작업이 시작되면서 '창경원 밤벚꽃놀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창경원은 1907년 이후 일제가 순종을 위로한다는 미명하에 궁궐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바꾼 탓에 일제 잔재 논란도 꾸준히 일었다. 결국 창경원 안에 심겨 있던 벚꽃나무는 대부분 어린이대공원과 현재 여의도 봄꽃축제가 열리는 여의서로로 옮겨졌다.





'여의도 봄꽃축제'는 일제잔재 청산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자 한국화된 벚꽃놀이의 대표적인 예다. 2005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서로에서 '벚꽃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07년 '벚꽃' 대신 '봄꽃'을 넣었다. 이후 왕벚나무의 원산지를 제주로 밝혀냈고, 진달래와 개나리, 철쭉, 조팝나무 등 토종 꽃나무를 심기도 했다.

'상춘의 민족'답게 꽃놀이에 대한 시민의 열망은 팬데믹 와중에도 꺾이지 않았다. 지난해 여의도 벚꽃축제를 주최한 영등포구가 사전 신청 후 추첨을 통해 3,500명에게만 오프라인 벚꽃 관람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자 3만5,000여 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강원 강릉에서는 경포호 근처에 벚꽃이 개화하자 사회적 거리두기 감시를 위해 드론을 투입하기도 했다.




지자체가 '비대면 상춘'을 유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영등포구는 온라인상에서 가상의 봄꽃 축제를 제공했다. 지난해 3월 전남 구례군은 동해벚꽃길을 일방통행으로 만들어 '드라이브 스루 꽃구경'을 시도하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시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드라이브 인' 방식으로 유채꽃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감소 추세로 접어든 시기, 때마침 벚꽃이 만개하며 시민들을 유혹한다. 팬데믹 내내 인파를 피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올 봄엔 활짝 핀 연분홍 꽃을 직접 마주해보는 게 어떨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데 꽃 구경, 사람 구경만한 것도 없을 듯 하다.








최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