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가계가 부동산 및 주식투자 등을 위해 금융사에서 끌어다 쓴 돈이 190조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발판 삼아 공격적인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결과다. 특히 지난 한 해 국내외 주식시장에서 110조 원이 넘는 돈을 굴리는 등 가계 투자액이 역대 최대 규모로 급증한 결과,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은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2021년 자금순환(잠정) 통계'를 보면,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 규모는 141조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던 1년 전(189조9,000억 원)보다 48조7,000억 원 줄었다.
순자금 운용은 가계가 예금이나 채권 등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자금 조달)을 뺀 금액으로, 사실상 가계의 '여유 자금'을 말한다. 가계는 소득과 대출을 통해 소비와 투자에 나서는데, 지난해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가 늘면서 여윳돈 규모는 줄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민간의 소비지출은 952조5,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55조1,000억 원 늘었다.
지난해 가계가 금융권에서 끌어다 쓴 돈은 189조6,000억 원으로, 2009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결제 전 카드 사용액(판매신용) 등도 10조4,000억 원으로 역시 역대 최대였다. 한은은 "주택 관련 대출 수요가 이어진 가운데, 소비가 회복되면서 판매신용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부터 이어진 주식 열풍에 가계는 지난해 국내외 주식시장에서 110조5,000억 원의 자금을 굴렸다. 국내주식(87조6,000억 원)과 해외주식(22조9,000억 원) 모두 역대 최대 투자 규모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말 기준 20.8%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주요국들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으로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되면서 투자 열기는 상반기에 못 미쳤다. 실제로 상반기 가계의 국내외 주식 취득액은 80조9,000억 원에 이른 반면, 하반기의 경우 29조6,000억 원에 그쳤다. 반면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상반기 10조6,000억 원 감소했던 장기저축성 예금은 하반기 16조1,000억 원 증가로 돌아섰다.
기업의 경우 수출 호조에 따른 영업이익 확대로 자금사정이 좋아진 결과 순조달 규모가 2020년 89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74조3,000억 원으로 줄었다. 정부 부문의 순조달 규모 역시 1년 사이 20조6,000억 원에서 12조7,000억 원으로 줄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고자 재정을 적극적으로 집행해 정부소비가 늘었지만, 국세 수입이 더 많이 증가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