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4개월 동안 고문료 19억 원'이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의 '뇌관'으로 떠올랐습니다. 7일 한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정확히는 19억7,748만 원. 2017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맡아 처음 3년은 연봉 5억 원씩 이후로는 연봉 3억 원씩 받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관련 내용을 알았지만, 지명을 포기할 만한 흠결로 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어려운 고액의 보수라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한 후보자가 김앤장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그 돈을 받았는가도 검증의 핵심이 될 전망입니다.
당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6일 "친(親)김앤장 인사를 대법관으로 추천해 준 대가"라며 그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하는 일도 있었고요.
한 후보자는 "김앤장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외국의 큰 회사들에 대한민국 기업 환경을 설명하고 투자를 설득하는 일을 변호사들과 같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론스타 관련 의혹에는 "김앤장이 론스타를 법률 대리했는지도 몰랐다"며 부인했고요.
사실 고액의 보수가 논란이 됐던 적은 이전에도 많습니다. 논란이 증폭돼 임명도 전에 낙마한 인물도 있는데요. 그중 박근혜 정부 시절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①안대희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임명 때 인사청문회를 한 번 거쳤기 때문에 무리 없이 통과가 예상됐던 인물이었습니다. 한 후보자처럼요.
안 전 대법관은 세월호 참사 이후 이른바 '국가 개조'를 이끌 적임자로서 2014년 5월 22일 총리 후보에 지명됩니다.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안 전 대법관이 검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전임 정홍원 총리,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더불어 '검치(檢治)'를 공고히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데요.
그럼에도 앞서 말씀드렸듯이 정치권에선 무난한 통과를 예상했다고 합니다. 2003년 대법관 임명 당시 그가 여당인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그의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률 78.7%로 통과됐기 때문입니다. 또 일명 '차떼기 사건'으로 불렸던 2003년 성역 없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 검사'로 불렸던 데다, 병역, 납세, 재산 등에서도 흠결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죠.
하지만 그가 변호사 개업 후 5개월 동안 무려 16억여 원의 수입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며 분위기는 급반전됩니다. 세금으로 낸 6억 원을 제외해도 5개월 동안 수입은 10억 원. 먼저 논란이 됐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17개월 동안 16억 원을, 정홍원 총리가 24개월 동안 6억7,000만 원을 받았 것과 비교해도 어마어마한 액수였죠.
안 전 대법관 측은 "변호사 개업 초기 착수금조로 한꺼번에 몰려서 수입이 많이 잡혔다"고 해명합니다. 또 10억 원 중 4억7,000만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죠.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명분으로 지명된 인사에게 '전관예우'는 치명적 약점이 됐습니다. 또 나중에 기부했다는 4억7,000만 원 중 3억 원은 정홍원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기부한 것으로 확인돼 '꼼수 기부'라는 논란도 파생됐고요.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안 전 대법관은 "대법관 퇴임 이후 변호사 활동으로 늘어난 재산 11억여 원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정공법을 선택합니다. 여당 새누리당은 "공직자의 재취임을 2년 동안 제한하는 '안대희 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으름장을 내는 야당에 맞서 "정치적 흔들기는 그만하라"며 그를 옹호하죠.
'변호사 수입 증빙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등 야당의 공세가 계속 거세진 탓이었을까요. 안 전 대법관은 지명 엿새 만인 5월 28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힙니다. "제가 총리 후보로 남아 있는 것은 현 정부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저를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 버겁다", "대통령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게 사퇴의 변이었습니다.
당시 6·4 지방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는 것도 지금과 비슷하네요. 안 전 대법관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당시 지방선거 최대의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관피아'(관+마피아) 척결을 위한 새 내각 구성에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요.
②고액 보수가 '아킬레스건'이 된 또 다른 인물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1월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됐던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었습니다. 정 전 수석은 2007년 11월 대검 차장검사로 퇴임한 지 6일 만에 법무법인 '바른'에 취직하는데요. 이듬해 6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되기까지 7개월 동안 6억9,943만 원의 급여를 받아 논란이 됐습니다.
정 전 수석은 "정당한 급여다. 그중 3억 원을 세금으로 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야당을 중심으로 "전관예우를 받은 사람이 전관예우를 감시해야 할 감사원장 직책에 어울리냐"며 자진사퇴하라는 주장이 나왔죠. 게다가 그가 민정수석이었다는 점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인사"라는 비판도 따랐고요.
이때는 여당인 한나라당 역시 자진 사퇴를 촉구합니다. 부정적 여론에 따른 후폭풍을 감안한 조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사전 조율 없이 발표해 "당청 갈등의 시발점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죠.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나라당 지도부의 결정이 보고된 것도 언론 발표 5분 전이었고, 청와대의 첫 반응은 "당이 제 갈 길 가겠다는 얘기냐"는 격분이었다고 합니다.
정 전 수석은 결국 감사원장으로 내정된 지 12일 만에 자진사퇴합니다. 2000년 감사원장직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래 '청문회 이전에 사퇴한 첫 후보자'라는 오명도 입죠. 그는 "청문회 없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재판 없이 사형 선고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울분에 찬 사퇴의 변을 밝힙니다.
③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서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까지 지명됐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④박근혜 정부 첫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김병관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도 고액의 보수가 논란이 됐습니다. 김 전 소장은 법무법인 '율촌'에서 7개월 동안 7억 원의 고문료를, 김 전 부사령관은 무기거래업체 '유비엠텍'에서 2년 동안 2억1,000만 원의 자문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고액의 보수보다도 다른 의혹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김 전 소장은 두 아들의 병역면제 그리고 부동산 투기가 더 큰 쟁점이었습니다. 증빙서류 첨부 없이 "위법 사항은 없다"고만 주장하다 결국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 중 헌정 사상 처음 자진사퇴하는' 인물로 기록됩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서류로 걸러질 수 있는 사안인데 검증에 소홀하지 않았나"며 인사검증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 전 부사령관은 지명되자마자 고액의 자문료 포함 10개의 의혹이 나오더니, 사퇴 직전에는 의혹이 30여 개로 불어납니다. 의혹이 많아 인사청문 일정이 잡히지 않자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김병관 용퇴론'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는 당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문료에 대해 "로비 같은 부당한 활동을 한 게 있다고 드러나면 책임질 각오가 돼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지만, 내정 발표 38일 만에 결국 자진사퇴합니다.
똑같이 고액의 보수가 논란이 됐지만 이를 뚫고 임명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⑤박한철 헌법재판소장 ⑥황교안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 ⑦송영무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 ⑧김오수 현 검찰총장 등입니다. 황 전 장관은 이어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도 통과합니다.
박 전 소장은 검찰 퇴직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4개월 동안 2억여 원을 받았고, 황 전 장관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로 일하며 17개월 동안 16억 원의 소득을 올립니다. 송 전 장관은 해군참모총장 퇴임 후 법무법인 '율촌' 상임 고문으로 계약서 없이 월 3,000만 원씩 약 10억 원을 받았고, 김 총장은 법무부 차관 퇴직 후 지인의 법무법인에서 매달 1,900만~2,900만 원의 고문료를 받습니다.
네 사람은 모두 고액 급여 문제에 대해 "국민 정서를 고려 못 해 송구스럽다"며 자세를 낮추는데요. 다만 송 전 장관은 "저도 놀랐다"는 뜬금없는 답변을 해 '유체이탈식 화법'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윤 당선인 측이 7일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하면서 국회의 인사청문 시한은 26일로 확정됐습니다. 그사이 통상 고위 관료 시절 외국계 회사 두 곳에 자택을 임대했다는 사실이 보도돼 '이해충돌' 논란까지 새로 생겼죠.
당선인 측은 현재까지 나온 논란을 방어하기보다는 "잘 판단해 달라"며 그의 역량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고위공직자 인사 기준인 '병역면탈·불법 재산증식·탈세·위장전입·논문표절·성 관련 범죄·음주운전' 등 7대 기준을 적용 '송곳 검증'을 예고하고 있고요. 한 후보자가 남은 20일을 잘 견딜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