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탈출한 고려인동포들...비자 발급 어려워 오도 가도 못해"

입력
2022.04.06 16:30
광주 고려인마을 운영하는 이천영 목사
"우크라 인접국에 고려인들 2,000명 정도 머물러"
"이 중 비자 발급은 300명 정도만...석 달짜리 비자"
"구 소련 해체 이후 무국적자 된 고려인 많아"
"인천공항서 가족관계증명서 요구도...해결돼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리 동포인 고려인들이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인근 루마니아, 폴란드로 피신했지만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 고려인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이천영 목사는 6일 우크라이나 인접국에 머물고 있는 고려인 수가 "2,000명 정도"라며 "그 가운데 비자가 나온 경우는 300명 정도밖에 안된다"고 밝혔다. 비자 발급이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려인들이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 목사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고려인들이 비자를 못 받는 이유에 대해 "신분증이 없거나 여권이 없으면 비자를 안 내준다"며 "최근 신분증으로만 비자 발행을 해준다고 했는데, 그 조건이 국내에 친지나 가족들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나마 인접국에서 발급해주는 비자도 "3개월짜리 임시 비자"라고 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에 '무국적자'가 많아 여권이나 신분증이 없어 오고 가도 못 한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구소련이 해체되기 전에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거주하는 동포들이 농업단을 구성해 우크라이나에서 계절 농사를 다녔다"며 "대체로 농업단 구성원 수가 50~100명 단위였는데, 그 수가 수만 명에 달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런데 구소련이 갑자기 해체돼 중앙아시아 각국이 독립을 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목사는 "이때 주소지가 있는 국가로 돌아가서 개별적으로 국적을 취득해라 했는데, (고려인들은) 작물이 자라고 있으니 수확할 때까지 농업지를 떠날 수가 없는 거다"며 "그러다 보니까 국적 등록 시기를 놓쳐 '무국적자'가 되고 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계 파악이 안 되는 무국적자에게 누가 국내 입국 비자를 내주겠나"며 "원칙적으로 (비자 발급 대상에서) 배제되는 게 아니라 부모는 여권이 있지만 자녀들은 여권을 만들지 못했다. 부모가 아이들 데리고 못 나가는데 어떻게 떠날 수 있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인들 어렵게 국내 들어와도..."

이 목사에 따르면 구소련이 해체됐을 때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자국민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구소련이 해체되자 특히 독일은 자국민 200만~300만 명을 특별기를 보내 찾아왔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라며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자국민을 찾아갔는데 유일하게 찾지 않은 국가가 하나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씁쓸해 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이들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고려인들에게도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서 국내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목사는 "국내 연고가 없으면 반영해주지 않겠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 입국하더라도 벽에 부딪힌다고 한다. 그는 "(코로나19) 검역소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오라는 거다. 어떻게 가족관계증명서가 있나"라고 토로했다.

이어 "인천공항에서 한 할머니가 손자가 왔으니 데려가서 자가격리시키겠다고 하는데도 증명되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잡고 있다"며 "오늘도 15명, 내일도 15명 등 총 30명이 들어오는데 이들도 마찬가지다. 빨리 이런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이 목사는 현재 고려인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지원금과 지역사회 후원으로 항공권을 마련해 고려인들을 돕고 있다. 현재까지 60명 넘는 고려인들에게 항공권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고국 땅을 밟아도 영주권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고려인 동포를 단순히 외국인 근로자 취급하며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들, 한국으로 들어가길 원해"

일주일 전 국내로 입국한 고려인 문 나탈리아씨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루마니아에서 비자 발급을 받았다. 그나마 문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그의 오빠와 남동생이 이미 2년 전 국내로 입국해 광주 고려인마을에 거주하고 있어 입국이 수월했던 것이다.

문씨는 같은 라디오 방송에서 "우크라이나 남쪽 미콜라이우주(州)에 살았다"며 "지난달 15일쯤 탈출했다. 거주지 인근 오데사라는 지역에서 버스로 루마니아 국경까지 갔다가 배를 타고 국경을 지났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이찬영 목사의 도움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만난 고려인들이 거의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어떤 분들은 여권이 없어서 비자가 안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제가 알기로 조금씩 이 문제가 풀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항공권 구하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갑작스럽게 우크라이나를 떠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돈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전쟁이 시작되고 직장도 못 다니고 월급도 못 받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한국 정부에서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며 "최대한 빨리 비자를 받고 한국으로 와야 되는데, 고려인들 중 많은 분들이 한국말을 못 한다. 어린 애들도 국내에 오면 학교 문제 등에 직면한다"며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지만 우리 고려인들에겐 사소한 문제가 아닌 큰 문제다"고 토로했다.

문씨는 오빠와 남동생이 현재 광주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며 "이제 외국인 등록증을 신청해서 받고 직장을 구해서 일하고 싶다"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