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에서 드러난 민간인 학살 정황에 대해 "서방 측 여론전" 운운하며 러시아 감싸기에 나섰다. 최근까지 '민간인 희생'을 우려하며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지켰던 최소한의 태도마저 접어버린 꼴이어서 중국을 향한 비판 여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선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자의 참상을 담은 90초 분량 영상이 공개됐다. 수도 키이우 북서쪽의 부차를 비롯해 이르핀, 디메르카, 마리우폴 등에서 아동을 포함한 민간인 시신들의 처참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을 직접 공개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군은 민간인의 팔다리를 자르고 목을 베었다"며 "오로지 재미로 아무나 죽이고 온 가족을 몰살했으며 시신을 불태우려 했다"고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해당 영상을 본 대다수 안보리 회원국 대사들이 경악한 가운데, 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영상의 진위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부차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은 끔찍하다"면서도 "사건의 전후 과정과 정확한 원인에 대한 검증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도 6일 "부차 사건이 불을 지르는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사설을 내고 "부차 사건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경향은 여론전과 심리전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도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지정학적 이익을 얻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시도는 결국 더 큰 인도주의적 비극을 촉발할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정황이 드러나면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하는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이번 동영상 공개가 국제여론전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앞서 러시아를 두둔한다는 국제사회 비판여론이 한창 커졌던 지난달 7일 중국은 급작스럽게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대규모 인도적 위기 예방을 위한 6가지 제안'을 제시했다. 당시 제안에는 '피란민 지원'은 물론 '민간인 보호' 같은 조항이 담겼지만 이번 사태가 터지자 다시 러시아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을 노출한 셈이다.
유럽연합(EU) 고위 대표는 중국의 이 같은 태도를 "귀머거리 같다"고 비판했다.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전날 유럽의회 회의에서 지난 1일 화상으로 열린 'EU-중국 정상회의' 당시 분위기를 언급하며 "그들(중국)은 우크라이나의 인권 등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하지 않았고 대신 긍정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것은 대화라기보다 귀머거리의 대화였다"며 허탈감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