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당시 서울의 모교에는 가끔 OB베어스 선수들이 찾아와 훈련을 하곤 했다. 박철순 계형철 김우열 등 원년 스타들의 연습 장면을 집에 가는 것도 잊고 마냥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프로야구 개막 초기 선수들은 제대로 된 연습장을 구하기 힘들어 흙먼지 풀풀 날리는 중고등학교 운동장을 빌려 쓰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프로야구가 어느덧 마흔 살이 됐다. 프로야구는 그동안 크게 성장해 6개였던 구단이 10개가 됐고, 800만 관중 시대도 열었다. 오랜 시간 국민들은 프로야구로 애증 섞인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프로스포츠는 화려하게 성장했지만 그 이면엔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발버둥쳐야 하는 현실이 있다.
이번 시즌 개막 전 눈길을 끌었던 건 잠실야구장 원정팀 로커룸의 새단장 소식이었다. 잠실야구장은 1982년 지어진 이래 그동안 원정팀을 위한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선수들의 불편이 컸다. 로커룸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낙후됐고 비좁았다. 선수들은 짐으로 가득 찬 좁은 복도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샤워기는 고작 3대뿐.
메이저리그에서 온 추신수는 지난 시즌 “너무 열악하다”며 잠실야구장을 직격했다. 여태 모른 체하던 구장 측이 추신수의 비판은 아팠는지 그제서야 로커룸과 샤워실 등을 개선해준 것이다. 이젠 시설이 좋아졌다니 다행스러우면서도 이렇게 고칠 수 있는 걸 그동안 왜 안 된다고만 했던 걸까 의문이 든다.
야구보다 한 해 늦은 1983년 개막한 한국 프로축구는 올해 40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월드컵 10회 연속 출전의 밑바탕이 된 프로축구 K리그이지만 아직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바로 잔디다. 겨울이나 여름, 구장들의 잔디는 엉망진창이 된다. 누렇게 죽어 맨땅이 드러나고, 선수들이 발 딛는 곳마다 너덜너덜 떼가 떨어져 나간다.
구단들은 잔디 관리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통풍, 채광을 고려하지 않은 오래된 경기장의 구조적 문제에다 잔디가 우리나라의 혹서, 혹한을 견뎌내기 힘들다는 것. 그렇다고 마냥 누더기 잔디에서 축구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잔디는 축구의 밑바탕이다. 제대로 된 잔디 없이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칠 수 없다. 또 잔디의 온전한 푸르름은 축구의 격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K리그와 유럽 빅리그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잔디의 수준이다.
최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인조잔디 5%와 천연잔디 95%를 섞어 내구성을 높인 하이브리드 잔디로 교체했다. 지난달 치러진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이 그 하이브리드 잔디 위에서 치러졌다. 적응이 안 된 선수들이 미끄러지곤 했지만 모처럼 뛰어도 파이지 않는 잔디 위에서 경기가 진행됐다. 서울월드컵구장이 큰 돈을 들여 하이브리드 잔디를 도입한 것도 ‘논두렁 잔디’라는 뼈아픈 지적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40년 열심히 뛰어준 프로야구, 프로축구를 위해 우린 무엇을 해주었는가. 아직도 맨땅에 헤딩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 마흔 줄에 든 그들에게 그에 맞는 예우는 해줘야 하지 않은가. 핑계가 아닌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 프로스포츠도 제대로 된 프로의 대접을 받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