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건설된 전국 아파트 가운데 15%는 라돈 농도 권고기준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라돈은 국제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신축 아파트 '라돈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2019년 권고기준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그보다 많은 라돈이 검출돼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2021년 신축 공동주택 라돈 자가측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조사한 2,531가구 중 399가구(15.7%) 실내에서 권고기준인 148베크렐(Bq/㎥)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 심지어 권고기준의 3배에 달하는 457.4베크렐이 나온 아파트도 있었다.
이는 시공사가 측정대행업체에 의뢰해 측정한 뒤 공고한 수치다. 실내공기질관리법에 따르면, 신축 공동주택 시공사는 입주 7일 전까지 환경부가 공인한 측정대행업체를 통해 공기질을 측정하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결과를 알려야 한다. 환경부장관은 지자체장으로부터 결과를 보고받는다.
문제는 라돈 농도가 권고기준 이상이어도 조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에는 권고기준만 있고 기준 초과시 별도의 조치나 재측정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없다. 최은영 도시연구소장은 "권고로 두면 건설사는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해 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입주민들은 비싼 값을 주고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고도 건강에 위협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라돈은 암석이나 토양에서 자연 발생하는 물질로 환기를 통해 농도를 저감시킬 수 있어 대다수 국가가 권고기준으로 관리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148베크렐은 미국과 동일하고, 스웨덴(200베크렐)이나 캐나다(200베크렐) 등 선진국보다 높은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나마 라돈 권고기준도 2018년 이후 사업계획이 승인된 아파트에만 적용된다. 이전에 건설된 아파트는 기준조차 없는 셈이다. 처음에 정부는 2018년 1월 1일 이후 승인받은 아파트에 대해 200베크렐을 권고기준으로 설정했다. 이후 라돈 논란이 계속되자 2019년 7월에 기준을 148베크렐로 강화했다.
라돈 수치 공고를 최초 입주자만 볼 수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법상 신축 공동주택 시공사는 공기질 측정 결과 공고를 입주 7일 전부터 60일간 관리사무소나 아파트 입구 게시판,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고해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공고 의무가 사라져 이후 매매나 임대차 계약으로 입주한 주민은 라돈 농도가 얼마가 나왔는지 알기 어렵다.
김성원 의원은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여전히 신축 아파트에서 다량 검출돼 국민의 불안을 사고 있다"면서 "수치를 넘겨도 제재할 수단이 없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정부 차원의 라돈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라돈 수치 저감을 위한 예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영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친환경 건축자재를 쓰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시공사는 시공 전 아파트를 짓는 땅의 라돈 농도가 얼마나 되는지부터 측정해 저감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