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로 대출"… 보이스피싱 억대 피해자 극단적 선택

입력
2022.04.05 11:21
"저금리 대출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지인들 돈 빌려 보이스피싱에 돈 전달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속아 1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40대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5일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2월 25일 낮 부산 영도구의 한 도로에 주차된 승용차에서 4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 안에서는 극단적 선택의 흔적이 발견됐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경찰은 A씨가 보이스피싱 피해에 따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부산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금융기관 대출 등 모두 1억원이 넘는 부채를 지고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실적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A씨는 “금감원의 전수 검사에 적발되지 않고 현재의 대출 금리보다 싼 금리로 대출해 준다”는 전화 한 통을 지난 2월 받았다. 걸려온 전화는 ‘070’이 아닌 ‘010’으로 시작하는 전화였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불법 중계기를 이용해 전화번호를 조작한 것이었다.

금융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일당은 “싼 금리의 새 대출을 위해서는 기존 대출을 갚아야 한다”면서 접근했다.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인지도 모르고 지난 2월 21일부터 3일 동안 부산을 비롯한 경북, 대구, 울산 등지로 돌며 10차례에 걸쳐 1억1,650만원을 전달했다. 이 돈은 대부분 자신을 어려움을 알고 있던 지인들에게서 빌린 것이었다.

A씨는 뒤늦게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그 동안 걸려 왔던 전화로 연락을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A씨 주변인들은 “A씨가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로 매우 힘들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좀더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려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겨우 마련한 돈을 일순간에 잃어 버린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 외에도 10여 명의 피해자가 더 있어 피해 금액도 수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A씨에게 돈을 받은 30대 여성 수금책 2명을 붙잡아 구속했고, 나머지 1명을 추적 중이다. 하지만 중국에 머무는 것으로 보이는 보이스피싱 총책 검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산= 권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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