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로 숨진 보건소 직원, 월 127시간 초과근무·폭언까지 당했다

입력
2022.04.05 18:14
고 천민우 주무관 사망 조사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전국을 휩쓸고 간 2020년 5월. 인천 부평구보건소 청천보건지소에서 재활치료실 운영을 담당하던 천민우 주무관은 보건소 내 코로나19 상황실로 파견됐다. 서른 다섯살, 다소 늦은 나이에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시험을 치러 공무원이 된지 4개월 만이었다.

물리치료를 전공한 천 주무관의 업무는 방역과 역학조사 보조 등 행정업무였다. 전문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에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지난해 1월 상황실에 정식 발령됐다. 직전 달에만 127시간 초과근무를 할 정도로 상황실 인력이 부족해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상황실 동선팀에서 확진자 동선 파악과 의료기관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점검 등을 담당했는데, 팀원이 자신과 시간선택제 공무원, 공무직 등 고작 3명이었다. 공무직의 경우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아 초과 근로에 제한이 있어, 천 주무관의 업무 비중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해 7월과 8월 두달간 천 주무관의 초과근무시간은 227시간에 달했다. 확진자가 늘면서 그해 7월부터 동선 파악을 위한 현장조사도 2인 1조에서 혼자 나가는 걸로 바뀌었다. 포장마차, 노래방 등을 야간에 돌며 역학조사도 해야 했다.

천 주무관은 지난해 8월 17일 보건소 직원을 위한 심리 지원 상담에서 "민원인들의 감정적 반응에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늦은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업무 지시로 쉴 수가 없다"며 "계속해서 이어지는 초과 근무로 체력과 정신적 에너지가 바닥 났다"고 호소했다.

천 주무관은 지난해 9월 14일 코호트 격리 중인 복지시설 관리장에게는 폭언까지 들었다. 확진자가 추가로 나와 격리기간이 길어지자 전화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날 한 확진자 밀접접촉자에게 자가격리 통보를 하는 과정에서 욕설을 듣기도 했다. 천 주무관은 동료에게 "이 나이 먹고 이런 취급을 받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며 "(다음날 출장을 가서) 관리장 얼굴을 직접 볼 생각에 너무 힘들다. 가기 싫다"고 털어놨다.

결국 그는 다음날인 지난해 9월 15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공무원이 된지 1년 9개월 만이었다. 숨지기 전 10주 중 5주를 주 6일 출근했고, 1주는 전일 출근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지난해 연차와 특별 휴가 나흘을 사용했는데, 휴가 전후로 밀린 업무 해소를 위해 초과근무를 했다.

4일 '천 주무관 과로사 원인조사위원회(원인조사위)'는 이와 같은 사망 원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사망 원인으로는 △장시간 근무로 누적된 피로 △심리적 어려움과 스트레스의 지속 △기한 없이 연장되는 근무시간과 직무환경 고민 등을 꼽혔다.

원인조사위는 재발 방지를 위해 보건소 직원에 대해 △심리상담사와의 전문상담 서비스 제공 △주당 노동시간 최대 52시간 이내 관리 △비상상황이 아닌 경우 퇴근 이후 업무 지시 제한 △예외 없는 순환 근무 등도 권고했다. 부평구 관계자는 5일 "권고안에 대한 이행계획을 수립, 근무환경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