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총리·책임장관제' 고삐… 스스로 힘 빼는 윤석열 당선인

입력
2022.04.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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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장관에 실질적 인사 추천권 보장
정책실장 폐지 등 '슬림 청와대'도 속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신호탄으로 책임총리ㆍ책임장관제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내각으로 분산하고, 총리 주도의 국정운영을 실천해 역대 정부에서 말뿐이었던 ‘책임 내각’을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핵심은 ‘인사권’이다. 총리와 장관의 인사 추천권을 보장하되, 성과에 따르는 책임을 묻겠다는 게 윤 당선인의 구상이다. 당장 한 후보자의 의중이 조각 작업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尹 "실력 없는 사람 뽑겠는가"... 인사권 보장 의지

윤 당선인은 4일 책임총리ㆍ책임장관제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 광장에서 열린 한국보도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한 그는 내각 중심의 국정운영을 묻는 참석자에게 “같이 일할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라도 실력 없는 사람을 뽑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총리에겐 장관 인사 추천권을, 장관에겐 차관 추천권을 주고 대통령은 이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것이다.

윤 당선인은 꾸준히 ‘권한 내려놓기’를 시도하고 있다. 총리 지명 발표 전날인 2일 한 후보자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3시간 넘게 장관 인선을 논의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한 후보자가 충분히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하루 전 미리 장관 후보군 인사 검증 자료를 건네기도 했다. 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는 “한 후보자가 실질적 인사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라며 “대통령 당선인과 총리 후보자가 이렇게 장시간 내각 구성을 논의한 것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내각 역할 늘려 힘 싣고, 대통령실은 대폭 축소

정부 출범 후에도 내각과 총리에게 보다 힘이 실릴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굵직한 정책 의제를 발굴하고, 집행 및 운영은 내각이 맡는 식으로 업무 분담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많다. 특히 국가안보의 경우 북핵과 군사 위협과 같은 전통 안보는 대통령실이, 환경이나 감염병, 기술 유출과 같은 신흥 안보는 총리실이 담당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총리실 산하에 신흥안보위원회(ESC)를 두겠다는 윤 당선인 공약도 이를 뒷받침한다.

반대로 대통령실 권한과 인력 규모는 대폭 축소된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라는 물리적 조치를 넘어, ‘슬림한 청와대’로 소프트웨어까지 확 바꾸겠다는 결심이 확고하다. 윤 당선인 직속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에서 대통령실 조직 개편안을 검토 중인데,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 절반 이상을 없애고 남은 자리도 명칭을 바꾸는 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도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韓 의중, 조각 중대 변수로... 통상 이관 원점?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경우 한 후보자는 국회 인준 절차를 밟기 전부터 초기 내각 구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인사와 맞물린 정부조직 개편 작업에도 한 후보자 의견이 비중 있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한 후보자 역시 3일 “(정부 조직 개편은) 인수위에서 충분히 마지막 단계에 와 있지 않나 싶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진행 과정에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산업부 출신인 한 전 총리 지명으로 한때 급물살을 탔던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의 통상 기능 이관 논의가 원점 재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강유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