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엔데믹 전환 첫 국가?... 전문가들 "너무 이르다"

입력
2022.04.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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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 전환은 '안정적 관리'가 필수
치료제·변이·면역, 세 가지 여전히 불안
"겨우 정점 지났는데 엔데믹은 성급"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외래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받을 준비 중이다. 일반 외래 환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기존 외래 진료와 시간대를 구분해서 코로나19 환자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경증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동네 병·의원이 맡고 있지만,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하면 대학병원으로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병원에서 코로나19 입원 환자를 보는 한 교수는 “어느 병원에서나 외래, 입원 진료가 가능해지는 게 엔데믹(풍토병)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독감처럼 풍토병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전문가들은 우린 아직 그 조건들을 갖추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정부가 “한국이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한 건 그래서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①타미플루 같은 범용 치료제가 없다

사실 엔데믹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공식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크게 3가지를 전제조건으로 든다.

가장 중요한 게 일상 의료 체계에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네 병·의원 신속항원검사가 확대되면서 진단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치료다. 비대면 진료(전화 상담) 위주론 안 된다.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재택치료자가 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는 외래진료센터는 798곳이다. 지난 1일 576곳에서 사흘 만에 222곳 늘었지만, 확진자가 그간 매일 수십만 명씩 나온 걸 감안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지역 격차도 크다. 약 40%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세종과 제주엔 각각 4곳, 5곳뿐이다.

치료제는 ‘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가 있지만, 처방 대상이 제한적이거나 효과가 높지 않다. 과거 신종플루 유행 당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타미플루’ 같은 범용 치료제가 아직 없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팍스로비드 임상연구가 최근에야 시작됐다”며 “어느 병원에서나 치료하고 누구나 약을 먹을 수 있어야 엔데믹”이라고 설명했다.

②출몰하는 변이 ... 유행은 여전히 예측 불가

또 다른 조건은 지역사회에서 유행이 적정 규모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풍토병으로 치는 장티푸스는 해마다 환자가 200~400명 나온다. 적절히 관리(진단, 치료)가 가능할 뿐 아니라 환자 발생 규모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아직 확진자가 너무 많은 데다, 변이 바이러스가 줄줄이 출현하고 있어 언제 또 유행이 확산될지 불확실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조차 지금의 유행 상황을 서로 다르게 진단하고 있다. △아직 팬데믹이 안 끝났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대규모 유행이 일부 국가 중심으로 나타나니 ‘에피데믹(지역적 유행)’으로 내려갔다는 견해도 있고, △엔데믹보단 감염이 많은 ‘하이퍼 엔데믹(과다 빈도 풍토병)’ 상태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 일부 국가에선 결핵이 하이퍼 엔데믹이었다.

4계절 내내 존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성상 당분간 엔데믹과 에피데믹이 번갈아 나타날 거라는 예상도 나온다. 유행이 잦아들었다가도 바이러스가 재확산하거나 새 변이가 등장해 지역별로 다시 대규모 유행이 나타났다 안정되는 상황이 반복될 거란 의미다. 말라리아가 그런 예다.

③면역, 변이도 방어할 만큼 충분한가

감염이나 예방접종으로 생긴 국민들의 면역력도 엔데믹의 조건이 될 수 있다. 면역 체계에 형성된 항체의 방어 능력이 얼마나 오래 가고, 얼마나 다양한 변이에 대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갈지, 에피데믹이 될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면역력이 충분한 사람이 많을수록 위중증이나 사망도 치솟지 않고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엔데믹의 전제조건으로 꼽히는 이 세 가지 중 지금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방역당국의 엔데믹 언급이 시기상조였다고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이유다.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먼저 마스크를 벗은 외국도 발표하지 않은 엔데믹을 이제 겨우 정점을 넘긴 우리나라가 먼저 얘기한 건 의아하다”며 “앞으로 방역이나 접종을 어떻게 대처할지부터 신중하게 논의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엔데믹은 끝이 아니다”라며 “코로나 유행 상황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소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