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딱 봤더니 장애인이야, 니가 다 싫어, 이런 게 혐오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은 장애인 혐오를 한 적이 없다며 한 말이다. 이 사회에 장애인 혐오라는 평지풍파를 일으킨 사람의 변명치고는 참 순진하다. 그는 사회적 맥락을 가진 혐오라는 단어를 여태껏 일차원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 사회의 규범적 지식을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일전에 여성 혐오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이준석은 여자 좋아한다"는 엉뚱한 말을 한 것이겠고, 차이나타운 비하 발언도 중국인 싫어한다는 직접적 얘길 안 했으니까 혐오가 아니라고 믿고 있겠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지방선거 출마자 자격 시험을 치기 전에 자신부터 교양 시험을 치길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펴낸 책자에서 이 대표의 발언을 여성 혐오라 적시했다. 인권위는 혐오 표현을 "특정한 속성을 가진 집단을 대상으로,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모욕, 비하, 멸시, 위협하거나 이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는 효과를 가진 표현"으로 정의했다. 또 최근 이 대표의 발언에 장애인 혐오가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인권위가 혐오 딱지를 아무 데나 붙인다"며 이젠 국가기관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이준석식 내로남불이다.
이 대표는 그동안 자신의 SNS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줄곧 악마화했다. 시위 참가자가 할머니 임종 보러 가야 한다는 시민에게 "버스 타고 가라" 했다는 영상을 앞뒤 맥락을 잘라 올리고, 야외 시위에서 연막탄을 사용했다고 대단한 위협인 양 과장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다수 시민의 불편을 초래했다며 '비문명적' '언더도그마' '시민 볼모' 등의 공격적 언사들을 쏟아내고 공권력 집행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를 사회의 성역을 없애는 용기 있는 싸움으로 포장했다. 그래서 "가슴이 웅장"해졌는가.
소수자들의 헌법적 권리를 찾기 위한 시위가 다수의 출근길을 방해했다고, 기계적 법치의 잣대를 들이대고 적대시하는 게 과연 공화국의 윤리이고 정의인가. 이 대표는 위험천만하게 소수 집단을 갈라치고 표적화했다. 그 결과 전장연에는 욕설 전화가 쏟아지고, 지하철 시위 현장에선 시민들의 적대와 위협적 태도가 늘었다고 한다. 이 대표가 혐오의 배설에 도덕적 브레이크를 없앤 탓이다. 조금만 더 가면 물리적 폭력도 나올 것이다. 트럼프의 혐오 정치가 미국을 어떻게 난장판으로 만들었는지 우린 잘 알고 있다. 국정농단 주범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축하 난 보낼 아량이 넘쳤던 이 대표가, 절박한 장애인들 시위는 불법이라며 척결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무슨 선택적 관대함인가.
압도적 정권교체론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의 여성 혐오에 대한 역풍으로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질 뻔했다. 그러고도 그는 배운 게 없어 보인다. 이 대표의 퇴행적 정치 의식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일관되게 보여온 반지성주의다. 지성주의는 자신과 세계를 항상 반성적으로 이해하고, 관계를 성찰하는 태도다. 시험 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대표는 성찰에서 나오는 교양과 품위를 한번도 보여준 바가 없다. 성찰이 없으니 사회적 통찰도 있을 리 없다. 그는 정치를 늘 남초 사이트의 '키보드 배틀'로 여겨 왔다. 공감 능력 없는 사람이 공동체를 이끄는 건 위험천만하다. 세월호와 5·18 망언의 전력이 있는 국민의힘이 이젠 약자 혐오와 결별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제발 보수 유권자를 부끄럽게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