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反정부시위 격화... 대통령 일가 일부 해외 도피

입력
2022.04.03 20:23
2019년 '부활절 테러' 이후 코로나 팬데믹
관광산업 주 수입원이었지만 경제난 빠져

주말 통행금지령 내리고 SNS 일시 차단
대학 시위에 최루탄과 물대포 동원해 진압


인도양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반(反)정부 시위에 불이 붙었다. 당국은 통행금지령을 발령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차단하면서 시위 확산을 막으려 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가두 시위가 벌어져 최루탄과 물대포까지 동원했다. 대통령과 총리 등을 손아귀에 넣어 스리랑카 정계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라자팍사 가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글로벌 인터넷 감시 단체 넷블록스는 3일(현지시간) 실시간 네트워크 데이터를 토대로 스리랑카 전역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왓츠엡,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 대한 접근이 차단됐다고 밝혔다. 스리랑카 통신규제위원회는 현지 매체 아다데라나에 “국방부의 요청에 따라 일시적으로 SNS 접근 제한 조치가 이뤄졌다”고 확인했다. 다만 스리랑카 기술부는 SNS 금지가 이날 오후 3시 30분에 해제된다고 밝혔다.

스리랑카 당국이 SNS 제한 조치에 나선 것은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면서다. 지난 2019년 4월 ‘부활절 테러’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관광을 주력 산업으로 했던 스리랑카의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발전 연료가 부족해 순환 단전까지 겪고 있다. 분노한 민중은 스리랑카 최대 도시이자 경제 수도인 콜롬보 등에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잇따라 열아 왔다.

이에 대해 라자팍사 대통령은 1일 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말인 2일 오후 6시부터 4일 오전 6시까지 전국적 통행금지령을 발표했다. 치안ㆍ공공질서 보호 및 필수 서비스 유지를 위한 목적이었지만 사실상 3일로 예고된 대규모 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대통령 관저 앞으로 몰려온 시위대는 군경 차량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 돌을 던졌고 이에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동원해 강경하게 맞선 바 있다.

스리랑카 현지 매체 데일리미러는 사디스 프리마데사 통합국민당(SJB)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이 이날 콜롬보에서 가두 시위에 나섰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고 전했다. 또 이날 페라다니야 대학에서 열린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당국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다시 꺼내 들었다고 덧붙였다. 시위는 해외 스리랑카인 공동체로도 확산됐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와 호주의 퍼스, 브리즈번, 시드니, 멜버른 등 스리랑카인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남반구 일대 지역에서 스리랑카 정부의 무능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고 매체는 전했다.

한편 라자팍사 대통령의 조카이자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의 아들인 나말 라자팍사 청년체육부 장관의 부인 라미니와 장인ㆍ장모가 이날 아침 스리랑카를 출국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향했다고 데일리미러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마힌다 총리의 두 딸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매체는 이날 새벽까지 라자팍사 가문 구성원 중 총 9명이 스리랑카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라자팍사 가문은 스리랑카 정계 요직을 싹쓸이하고 있다. 대통령과 총리는 물론 여러 부처의 장관 및 차관 자리 등에 포진하고 있는 상태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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