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강원 동해 시내 곳곳을 휩쓸고 간 산불로 82.5㎡(약 25평) 남짓한 집을 잃은 김만식(55)씨. 그는 이후 한 달째 동해시가 마련해 준 망상해수욕장 인근 모텔에서 지내고 있다. 하루 세 끼를 인근 급식소에서 해결하니 '집밥'을 먹어본 지도 오래다. 화마를 피해 몸만 급하게 빠져나온 탓에 옷은 구호품으로 챙겨 입는다.
3일 만난 김씨는 "산불로 다 잃고 그나마 멀쩡한 트럭 한 대가 이젠 전 재산"이라고 먹먹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8년 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지은 집이 허무하게 사라지던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며 "불에 휘감긴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하루 2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산불 당시 강릉 옥계면에서 시작된 불은 강한 남풍을 타고 김씨가 살고 있던 괴란동을 휘감았다. "춤추는 듯한 바람을 타고 네 군데에서 등장한 불은 불과 10분 만에 집을 삼켰죠. 제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인 집을 말이죠." 누군가 홧김에 지른 불이 평범한 농민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셈이다.
김씨는 "불에 탄 집이 얼마 전 경매에 넘어간 상황이라 보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그래도 이틀 뒤 컨테이너 임시주택이 들어오니 어떻게든 해봐야죠"라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동해 시내 곳곳에도 산불이 할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확 트인 동해바다 풍경, 이른바 뷰가 일품이라는 묵호진동 마을 곳곳엔 검게 그을린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집터만 남았다.
논골담길로 잘 알려진 어달동 야산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민둥산이 된 산은 적은 비에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워 보였다. 주민 최정묵(68)씨는 "당시 동해 시내 야산이 모조리 타버렸다고 보면 된다"며 "코로나19로 관광객까지 확 줄어 앞으로가 걱정이다. 상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제발 동해를 많이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산불로 동해에선 73가구가 집을 잃었고 700여 가구가 크고 작은 피해를 당했다. 축구장 3,840개가 넘는 산림 2,735㏊가 잿더미로 변했다. 복구에 최소 556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동해시는 보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한 울진과 삼척, 강릉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2,219억 원에 달한다.
정부가 동해와 강릉, 경북 울진 등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지만 이재민들은 별반 나아질 게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무엇보다 폐허가 된 집을 다시 지을 때 받는 지원금은 고작 1,600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 경북도와 울진군은 불에 탄 집터에 새로 집을 지으려면 66㎡(약 20평) 기준 1억2,000만 원가량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심상화(국민의힘) 강원도의원은 "현재 건축비가 평(3.3㎡)당 600만 원이라 농막 한 채로 제대로 지을 수 없을 것"이라며 "대부분 노인들이라 은행 대출도 쉽지 않은 만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년 전인 2019년 4월 4일 역대급 피해를 낸 강원 고성, 속초 산불 때와 같은 불만이 또 터져나온 것이다. 더구나 소나무 군락지마저 사라진 탓에 송이버섯 채취가 불가능해져 생계가 막막한데도 이런 농가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을 계기로 국가방재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경남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은 "산불이 잦은 곳에 최대 30만L의 방화수를 담은 확산저지 거점(Fire Breaker)을 조성하자"고 강조했고,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보다 효과가 좋은 진화제 사용을 늘리고, 산지와 인접한 주택을 인허가할 경우 산림과 이격거리를 두도록 건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