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연일 치솟던 국제유가가 미국이 꺼낸 '전략비축유' 카드에 7달러 넘게 급락했다. 창고에 보관된 비상 원유가 시장에 대거 풀리면 꽉 막힌 원유 수급에 다소 숨통이 트일 거란 기대심리가 작용한 덕분이다.
1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향후 6개월간 전략비축유를 하루 평균 100만 배럴씩 방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총 방출량은 최대 1억8,000만 배럴에 이르는데, 이는 전 세계 석유 수요의 약 이틀치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을 포함해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도 공동 대응에 나설 걸로 예상되는 만큼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의 비축유가 시장에 풀릴 걸로 예상된다. IEA는 중동 전쟁으로 빚어진 1차 석유파동 직후인 197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석유공급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세운 국제기구다. 미국과 동맹국의 이번 비축유 방출은 50년 가까운 전략비축유 역사상 최대 규모다.
백악관은 "전례가 없는 방출 규모로 유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실제 대책 발표 이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달 31일 전날보다 6.9%(7.54달러) 내린 100.28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정부가 방출을 발표한 전략비축유(SPR)는 미 대통령이 유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위기 때마다 요긴하게 꺼내 쓰는 수단 중 하나다. 미국은 제1차 석유파동 당시 석유공급 차질로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입자 1975년부터 원유 비축을 시작했다.
다만 미국만 비축유를 쌓는 건 아니다. IEA 회원국(현재 31개국)은 전년도 일평균 순수입 물량의 90일분에 해당하는 비축유를 보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 가입은 성공했지만 IEA에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가입하지 못하다가 2002년 3월 2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우리나라는 9,700만 배럴 규모(순수입량 기준 106일)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IEA 회원국 중에서도 캐나다, 노르웨이, 영국과 같은 석유 순수출국은 비축유 보유의무가 없다. 미국은 원유 순수출국이지만 여러 이유로 비축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5억6,800만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전 세계 비축유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 대부분은 루이지애나와 텍사스주 해안가의 소금 동굴에 보관돼 있다. 보관 경비가 저렴하고 해안가라 선박을 통해 곧바로 근처 정제공장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축유는 경매를 통해 대략 13일 만에 시장으로 풀린다.
다만 비축유 방출 효과에 대해선 시장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10년 만에 5,000만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데 이어 지난달 1일 추가로 3,000만 배럴의 비축유 방출 계획을 내놨지만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미국이 방출하는 비축유 양이 역대 최대인 데다 동맹국의 공조도 예상돼 어느 정도 공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유가는 올 들어 무려 30% 넘게 올랐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변수 때문에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