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승패를 가른 건 부동산 세금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종합부동산세가 정권 교체로 이어졌듯 문재인 정부의 미친 집값과 세 부담, 더 커진 양극화도 결국 배를 뒤엎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메시지는 국민들의 집 걱정을 덜어 주겠다는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묵묵히 일한 사람은 누구나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고, 이사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국가를 약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의외로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옮기겠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선거를 통해서 뽑힌 국가 최고 지도자가 집무실을 어디에 둘지 정도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들의 집이 아니라 대통령의 집 문제가 가장 시급한 국가 현안인지는 갸우뚱거리게 된다. 국민들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대통령의 새집을 어디에 마련하느냐로 나라는 더 시끄러워졌다. 윤 당선인은 서민들의 집 걱정부터 챙겼어야 마땅했다. 순서가 틀렸다.
과정은 더 문제였다. 윤 당선인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들과 멀리 떨어져 소통에 문제가 많다고도 했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제왕적 권력의 극복을 제왕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인 건 모순이다. 국민 의견 수렴이나 공청회도 한 번 없었다. 이미 결정을 내린 뒤 ‘나를 따르라’며 ‘좋은 이름 지어주세요’라고 하는 건 소통이 아니다. 바야흐로 가상현실과 메타버스 시대, 물리적 소통에 방점을 둔 집무실 이전이 과연 맞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번에도 순서가 틀렸다.
더구나 용산행은 현 청와대와 국방부 협조가 필수다. 그러나 사전 협의나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없었다. 집주인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세입자를 갑자기 내보내야 할 땐 위약금과 복비, 이사 비용까지 쥐어 주며 통사정을 해야 한다. 이사 갈 곳을 구하고 날짜를 맞추는 데도 두세 달은 걸린다. 아무리 당선인이고 예비 국군통수권자라고 해도 한 달여 만에 짐을 싸 나가라고 ‘명령’하는 건 반발만 부른다. 역시 순서가 틀렸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선 이런 후임자가 위태해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물러날 권력이 제동을 거는 건 일을 더 꼬이게 할 뿐이다. 회사에서 부장이 바뀐다고 쳐 보자. 후임자가 임명장을 받고 인수 인계를 위해 사무실로 가 봤더니 공간 구조가 영 맘에 안 든다. 권위적 환경은 창의적 사고도 막는다. 이런 사무실로 들어가면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성공하고 싶은 후임자는 비장한 각오로 사무실을 아예 회사 밖에 차리겠다고 선언한다. 전임자가 볼 때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장 업무 공백 걱정이 태산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새로 깐 서버와 컴퓨터가 무용지물이 되는 건 차치하고 외부 손님들을 어디에서 맞을지도 답이 없다. 그렇다고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어떻게 될까. 바깥에선 옹졸한 전임자가 몽니를 부린다고 볼 수도 있다. 내키지 않아도 지원하는 게 모양새가 덜 빠진다. 책임은 후임자 몫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났다. 그러나 하루 만에 다시 온도차가 감지되며 국민 불안감은 여전하다. 문 대통령은 상춘재에 대해 ‘항상 봄과 같이 국민들이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집이라고 안내했다. 국민들은 두 사람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인수인계를 잘해 주길 바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너무 서두르지 말고 문 대통령도 적극 협조하는 게 순리다.
상춘엔 늘 봄(常春)이란 뜻과 함께 봄을 즐긴다(賞春)는 의미도 있다. 국민들은 코로나의 끝이 보이는 이 봄을 정말 나라 걱정 없이 즐기고 싶다. 정치가 국민에게 돌려줘야 할 건 청와대 정원이 아니라 협치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