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톤 넘는 황룡사 종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입력
2022.03.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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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은 중국 낙양의 소림사가 아닐까? 소림사는 개창자인 달마대사보다도 1979년 개봉한 이연걸의 영화 '소림사'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고승을 넘어서는 액션배우의 존재감이라니, 왠지 씁쓸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은 어딜까? 그건 불국사다. 10원 동전 안 다보탑의 존재는 불국사의 대표성을 잘 나타내준다. 여기에 아는 분만 안다는 1973년 1만 원권 지폐의 도안 역시 본래는 석굴암 본존불과 불국사였다.

또 중년 세대의 수학여행 코스에는 불국사가 필수였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불국사로 신혼여행을 가시는 분들도 많았었다. 사찰로 신혼여행을 간다는 게 웃기고 재밌는 상황이긴 한데, 실제로 당시에는 많이들 그랬더랬다.

경주에는 불국사 외에도 현존하지 않지만 유명한 사찰이 두 곳 더 있다. 그것은 황룡사와 감은사다. 553년 진흥왕의 창건 이래, 통일신라까지 400여 년간 최고사찰이었던 황룡사. 그리고 대왕암과 더불어 감포 앞바다의 왜구를 막고 있는 감은사 쌍탑의 늠름한 기상은 경주 최고의 멋진 풍광임에 틀림없다.

이런 황룡사와 감은사를 연결하는 진기한 전설이 후대에 만들어진다. 1238년 몽골의 침략 과정에서 황룡사는 방화로 소실된다. 정신적인 구심점을 타격해 무력감을 주려는 의도된 전술이었다. 그런데 이때 황룡사에 걸린 종을 감포 앞바다로 반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771년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무게는 12만 근으로 18.9톤이다. 그런데 754년에 주조된 황룡사종의 무게는 49만7,581근이니 무려 80톤이 넘는다. 실제로 발굴된 황룡사의 종각 유적을 보면, 나무 기둥이 2줄로 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거대한 종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특별한 건축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 이 종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그만 감은사 앞 하천에 종을 빠트렸다. 이로 인해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치면, 하천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하천은 '큰 종의 하천' 즉 대종천(大鐘川)으로 불리게 된다.

대체 80톤이 넘는 종을 전란 중에 감포 앞바다까지 가져갈 수 있었을까? 실제로 경주에서 감포로 가는 길은 매우 구불거리며 경사진 불친절한 길이다. 이 때문에 대종천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붙게 된다. 고려 말 왜구가 기승을 부릴 때, 감은사 종을 가져가다가 빠트렸다는 것이다.

어떤 종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종이 빠졌다는 구체적인 이야기와 대종천이라는 지명은 흥미로운 전설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예전 KBS는 특집 다큐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종의 흔적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왕암에 문무왕의 납골 흔적이 없는 것처럼, 전설은 그저 전설로 놓아두는 것이 아름다웠던 것일까?

이쯤 되면 어떤 분들은 '그렇다면 거대한 황룡사종은 어떻게 됐느냐?'고 묻고는 한다. 그러나 화재 전에 미리 반출한 것이 아니라면, 종은 생각보다 잘 녹는다. 종각이 불타는 온도 정도로도 종은 녹아내린다는 말씀. 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 2005년 양양지역의 산불로 종각과 함께 녹아내린 보물 제497호 낙산사동종이다.

물론 녹아도 동이라는 금속의 질량은 대부분 유지된다. 그러나 과거로 올라갈수록 금속의 값어치는 더욱더 치솟는다. 즉 노천에 녹아내린 80톤의 금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러면 종은 진짜 게눈 감추듯 사라지지 않았겠는가!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