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우리의 시각을 제한하는 대신 청각 등 다른 감각의 능력을 극대화한다. 국립극단에서 30일 막을 올린 '커뮤니티 대소동'은 그 어둠의 특성을 활용해 기획된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2015년부터 시각장애인과의 공연예술 활동을 이어 온 연출 이진엽은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서로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혀서 대화할 수 있는 장소로 어둠을 선택했다.
그런데 어둠만으로는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의 불균형한 소통 상황을 개선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안대를 한 관객이 암흑의 공연장 안에서 배우의 소리에 의지해 움직이면서 100분 동안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살려 소통할 수 있게 끌어가려면, 보다 세밀한 각본과 준비가 필요했다. 개막을 하루 앞둔 29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이진엽은 1년이란 공연 준비 기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코끼리 코는 누구나 아는 단순한 동작 같잖아요? 그런데 말로 한 번 설명해보세요. 정말 어려워요. '~처럼 움직여보라'고 표현할 수도 없어요. (공연 준비는)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언어로 모든 것을 전환하는 작업을 했어요."
이런 작업을 가장 가까이서 도운 이들은 이번 공연을 함께하는 시각장애인 배우진이다. 배우 9명 중 6명이 시각장애인이고, 그중 3명은 이진엽 연출 전작을 보러 왔던 관객에서 배우로 변신한 사람들이다. 이진엽은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비시각장애인으로서는 인지조차 못한 둘 사이의 차이를 작업 내내 맞닥뜨렸고, 그때의 혼란과 기쁨 등을 관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공연을 구성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자신의 몸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항상 움츠려 있어요. 집에서도 가구 등이 모두 장애물이니까요. 춤도 춘 적이 없는 거죠. 안무 선생님을 모셔서 가장 기본적인 표현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이제는 (시각장애인 배우들은) 춤을 좋아하죠."
장애와 예술을 연결할 필요성을 여기서 분명하게 깨달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가끔 '시각장애인에게 예술이 필요한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연습 기간 1년 사이 삶이 달라진 배우들을 보면서 확신을 얻었다. 물론 최근 공연 예술계에 프로젝트에 참여할 장애인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애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가 많아진 현상에는 "화제성으로 소비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도 생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럴 때 중요한 제도 하나라도 바뀌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2009년부터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를 이끈 그에게 이번 공연은 새로운 도전이다. '경기도 안산에서 이주노동자와의 작업'과 같이 일상 공간에서 커뮤니티 기반의 장소를 특정한 공연을 주로 하던 그가 처음 극장에서 선보이는 작품이라서다. 국립극단의 창작지원 사업인 '창작공감'과 인연을 맺으면서, 평소 장기 공연을 해보고 싶었던 꿈을 펼치게 됐다. 그는 "어둠이란 장소성을 갖고 지방과 해외에서도 '커뮤니티 대소동'을 선보이는 게 다음 목표"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4월 10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열린다. 장애인 관객은 공연 3일 전까지 국립극단에 신청하면 극장과 가까운 대중교통 출구, 버스정류소에서 이동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