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을 기다렸다. (장애인) 이동권은 법에도 명시된 권리이지 않느냐."
2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임이자 간사와 김도식 인수위원을 만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의 호소였다. 박 대표는 이날까지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등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지원 예산 확대를 주장하며 출근길 시위를 벌여 왔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요구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 1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후 2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이에 앞서 1984년 서울시장에게 '도로 턱을 없애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김순석씨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입법 문턱은 여전히 높다. 전장연이 개정·보완을 요구하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과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등을 심의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소위 회의록에는 돈줄을 쥔 정부 부처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신중한 검토'를 이유로 논의를 미룬 뒤 방치하는 '좌절의 패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교통약자법이 국회 입법 과정의 첫 문턱을 넘은 지난해 12월 22일 국토위 소위에선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을 관리하는 이동지원센터의 운영 비용을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이 주요 의제였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현재 보조금법 시행령에서는 장애인 특별운송사업에 대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했지만 어렵다는 입장이었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여야 의원들은 성토를 쏟아냈다.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 사무로 묶어 놓아 국비 지원이 안 되게 만든 것은 이번 기회에 분명히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고,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재정당국의 입장'을 밝힌 상임위 전문위원을 향해 "기재부를 보좌하는 기관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도 "너무 오래 끌어 장애인들의 마음이 급하다"며 "이렇게 해버리면 또 다음 국회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작 통과된 법안에는 이동지원센터 운영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 대신 '지원할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버스 교체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했지만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토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예산 편성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일은 자주 있다"며 "개정안 통과 후 국토위 차원의 보완 입법을 위한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고 했다.
이동권 보장과 함께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 평생교육법, 탈시설 지원법, 권리 보장법이 논의된 지난해 11월 24일 보건복지위 소위.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장애인 단체들의 의견이 통일되지 못했고 최근 발의돼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며 "제정할 법인데 공청회 한번 안 하고 법을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느냐"고 심사 연기를 제안했다. 소위원장을 맡은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도 "이 부분은 정부 측의 의견 조율도 필요하다"며 "민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과 공청회 시간을 잡겠다"고 거들었다.
보다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대선과 맞물리면서 그로부터 4개월 가까이 지난 현재 법안 관련 공청회는 감감무소식이다. 복지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연말 이후 국회가 대선 준비 체제에 돌입하면서 공청회 일정에 대한 여야 간사 협의도 진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