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단 하루 만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뒤통수를 쳤다. 29일 또다시 과거사 왜곡을 자행한 일본 정부의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로 전날 윤 당선인과 주한일본대사의 만남에서 엿보인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희망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특히 검정 내용이 역사 왜곡을 넘어 ‘소거’ 수준까지 치닫는 등 일본의 과거사 미화가 노골화하면서 윤 당선인은 관계 개선은 고사하고, 추가 상황 악화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자국 중심 역사관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고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즉각 시정을 촉구했다. 외교부는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도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통과시킨 고교 교과서 상당수는 지난해에 견줘 한국 관련 왜곡 정도가 훨씬 심해졌다는 평이다. 신청본에 있던 ‘일본군(또는 종군) 위안부’ 및 ‘강제연행’ 기술에서 각각 ‘일본군’, ‘강제’ 표현이 삭제됐다. 지난해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이 분량은 줄였어도 강제성은 인정한 반면, 이번엔 일본군 관여나 강제성을 나타내는 표현을 없애 더 후퇴했다. ‘고노담화’ 등을 통해 일본 정부 스스로 인정한 과거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독도 역시 ‘일본 고유 영토’라는 기술이 그대로 유지됐다.
역사교과서 파문은 한일관계 복원을 전면에 내건 윤 당선인에게 상당한 악재다. 그는 전날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일본대사와 만나 “(한일관계는) 풀리기 어려울 것처럼 보여도 진정성을 갖고 대화하면 어렵지 않다”면서 개선을 자신했다. 북핵 협력을 고리로 한 의기투합이었지만, 불과 하루 만에 허를 찔린 격이 됐다.
특히 과거사는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 정서상 절대 양보가 불가능해 한일 간 다른 협력 방안으로 대체할 수 없는 문제다. 벌써부터 새 정부 한일관계의 위기를 점치는 배경이다. 게다가 일본이 왜곡을 집중한 ‘위안부와 강제징용’ 이슈는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한일관계가 살얼음판을 걸은 핵심 원인이기도 하다.
올해부터는 여기에 일본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사도광산’ 문제까지 더해져 윤석열 정부는 ‘과거사 수렁’에 더 깊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인은 ‘김대중ㆍ오부치 선언 계승’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 등을 한일관계 복원 구상으로 내놨지만, 다른 외교안보 공약에 비해 구체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현 정부보다 해법 찾기가 더 꼬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사정에 밝은 외교소식통은 “문재인 정부도 한일관계 개선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라며 “위안부ㆍ강제징용 상수에 변수도 자주 돌출된 만큼, 새 정부가 북한이라는 공통 관심사에만 기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