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분' 文·尹 회동, 늦었지만 가장 길게 만났다... "흉금 터놓고 대화"

입력
2022.03.2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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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도울 것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 
尹측 "화기애애한 분위기"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두 분이 서로를 너무나 존중하는 느낌이었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은 28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만찬 회동에 배석한 뒤 느낀 소감을 이같이 전했다. 장 비서실장은 “흉금을 터놓고 대화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는 표현을 각각 3번씩 반복해 쓸 만큼, 두 사람 사이에 불협화음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려 애썼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회동 성사 전까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인사권 행사 등을 놓고 격렬히 대립했다. 이런 사전 갈등을 의식한 듯, 양측은 서로를 극진히 예우했다. 두 사람의 회동은 역대 신구 권력 간 ‘가장 늦었지만’(19일 만), ‘가장 오랜’(약 3시간) 만남으로 기록됐다.

문 대통령 ‘가이드’처럼 靑 안내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 59분쯤 청와대 여민관에 먼저 나와 윤 당선인을 기다렸다. 윤 당선인은 벤츠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문 대통령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악수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잘 오셨습니다”라고 했고, 윤 당선인은 “잘 계셨죠”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청와대 마당인 녹지원을 가로질러 나란히 걸었다. 다소 긴장한 듯 악수 외에는 친밀한 스킨십을 주고받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먼저 꽃과 나무를 가리키며 말을 걸었다.

▶문 대통령: “매화 꽃이 폈다.”

▶윤 당선인: “정말 아름답다.”

▶문 대통령: (상춘재ㆍ常春齋 현판을 가리키며) “항상 봄과 같이 아마 국민들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윤 당선인: “네, 아유 정말…”

2시간 51분 회동... 역대 가장 길었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을 융숭히 대접했다. 메뉴는 한식 코스요리가 준비됐다. 해산물 냉채, 해송 잣죽, 한우갈비와 더운채소, 금태구이와 생절이, 봄나물비빕밥, 모시조개 섬초 된장국, 과일, 수정과, 배추김치, 오이소박이, 탕평채, 더덕구이 요리 순이었다. 술을 즐기는 두 사람은 반주로 레드와인을 택했다.

회동 시간도 역대 신구 권력 회동 중 가장 길었다. 오후 5시 59분부터 오후 8시 50분까지 2시간 51분 동안 자리를 함께 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2시간 10분 기록을 훌쩍 넘었다. 회동에는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장 실장이 배석했다. 두 사람의 ‘어색한 관계’를 감안해 ‘감초’ 역할을 맡겼다는 해석이 나왔다.

尹측 “흉금 털어놓고 대화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녹지원과 상춘재 만남 때까지도 웃음기를 띤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다만 비공개 만찬 후 브리핑에서 나온 얘기는 달랐다.

청와대 관계자는 “윤 당선인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청와대는 회동 관련 브리핑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장 실장은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한 브리핑에서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 드리기 위해 현 정권과 차기 정부의 권력 인수인계를 잘 해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부드러웠던 회동 분위기를 여러 차례 부각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청와대 집무실 용산 이전, 공공기관 인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현안을 두고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등 과거 악연은 일절 대화 목록에 오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헤어지면서 윤 당선인에게 넥타이를 선물하며 “꼭 성공하시기를 빈다. 제가 도울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달라”고 했다. 윤 당선인도 “건강하시길 빈다”고 화답했다. 양측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 실장 라인을 통해 집무실 용산 이전 등 실무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지각 회동 1등 공신은 김부겸

한편, 양측의 ‘지각 회동’이 성사된 데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리는 앞서 26일 윤 당선인을 만나 “회동이 늦어져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며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설득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검사 시절인 2014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로 대구고검으로 좌천됐을 당시 대구ㆍ경북(TK) 출신 정치인 김 총리와 친분을 쌓았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