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시위가 서울 시민들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다. 선량한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한다."
28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동권 쟁취를 위해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을 겨냥해서 한 말이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장애인들을 '선량한 시민'과 갈라치기 한다는 점에서 혐오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나흘째 같은 발언을 한 이 대표는 무수한 지적을 받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장애인들을 찾아가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대신 사과한 건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장애인의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고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한 점을 정치권을 대신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를 지켜본 장애인들도 고개를 떨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이 대표는 집권여당 대표가 된다. 대선 때 젠더 갈라치기를 한 데 이어 이번엔 장애인을 저격하는 그의 인식과 화법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국민의힘은 침묵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뒤늦게 장애인들과 소통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2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하는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달 25일 이후 매일 페이스북에서 전장연의 시위를 깎아내린 데 이어 당 지도부가 모인 자리에서 이를 공론화한 것이다. 그의 발언을 제지한 사람은 없었다.
이 대표는 "전장연이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엔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불법적이고 위험한 방법으로 관철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는 20여 년째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역사 승강기 설치·저상버스 보편화 등 교통 약자를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 보강을 요구했지만, 국회와 정부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미적거렸다. 그 사이 장애인들은 대중교통 이용 중에 목숨을 잃었다. 이 대표가 비판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장애인들의 마지막 호소로,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의 발언이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김예지 의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 사회니 이 대표도 발언할 수 있지만, 그의 발언은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며 "이 대표가 비장애인을 선량한 시민으로 표현했는데, 거꾸로 보면 장애인 단체엔 불량한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엔 장애인이나 장애인 단체를 혐오하는 시선이 엄존한다"며 "정치인인 이 대표의 발언이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분노를 키우는 트리거(계기)가 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짚었다.
지체장애인인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도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문제를 놓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대립 구도로 바라보는 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표를 찾아가 우려를 전달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 대표에 대한 공개 비판을 하지 않았다. 행동에 나선 건 장애 당사자인 김예지 의원과 이종성 의원뿐이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장애인 단체의 시위 방식에 대한 이 대표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시민들도 많다"며 "아직까진 당 차원에서 제동을 걸 만한 사안으로 보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이날 비공개 최고위 회의에서 일부 최고위원들이 이 대표의 발언에 우려를 표했으나,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추이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 측도 몸을 사렸다. 김은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전장연 시위에 대한 윤 당선인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당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건 원내로 질문을 해 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김예지 의원이 나선 이후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자 대통령직인수위가 뒤늦게 나섰다. 사회복지문화분과 임이자 간사와 김도식 인수위원 등은 29일 전장연의 서울 광화문 지하철역 시위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의원인 임 간사는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너무나 당연한 권리"라며 이 대표와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