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버스를 타면 휠체어를 탄 승객이 승차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운전 기사는 차에서 내려 승객이 안전하게 타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도쿄 시민의 발이나 마찬가지인 전철도 그렇다. 역무원이 휠체어 승객이 탈 때와 내릴 때 발판을 설치해 주고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는지 안내도 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불만을 표하는 승객은 본 적 없다. 반면 한국에선 곧 여당이 되는 정당의 대표가 장애인들이 출근 시간에 전철에 탑승하는 시위를 해 비장애인에게 불편을 준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지난주 도쿄 국회에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정치인뿐 아니라 평범한 일본인들도 시청하며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한국 국회도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을 논의했지만 여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경제적 영향 등을 고려해 외교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지만, 민주주의 보루인 국회에서조차 인류 보편의 가치보다 당장의 이익을 따진 건 안타깝다.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고, 당시 정부는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홍보했다. 실제로 한국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자주 함께 초청받는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한국은 일본을 압도할 정도의 강국이 됐다. 한국의 경제적 부상을 불안해하는 일본에선 언제 양국의 위상이 뒤집힐지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엿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진정 ‘선진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국내 정치나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만 매몰돼,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나 우리가 세계인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은 나중에 하자고 제쳐 놓고 국제사회 리더를 자처하는 것은 민망하다. 일본도 과거 고도성장기 서구로부터 눈앞의 이익만 좇는 ‘경제 동물’이라고 비난받았던 적이 있지만 점차 변화했다. 일본과 한국의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금은 각각 2억 달러와 1,000만 달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