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같은 쪽방에서 재택치료?… 주거취약 확진자 관리 지침 '유명무실'

입력
2022.03.25 12:00
쪽방·고시원·노숙인 생활치료센터 입소 원칙 
실제론 일반 재택치료와 다름없이 방치 만연
격리실 없는 노숙인시설 내 치료 지침도 문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 A씨는 지난 13일 오미크론 변이 확진 판정을 받고 관할 보건소에 '쪽방에 살고 있다'고 알렸다. 정부 방역지침상 쪽방 거주자는 주거취약계층으로 분류돼 코로나19에 확진되면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게 된다. 실제로 A씨 거처는 수십 가구가 촘촘히 붙은 구조라 격리를 통한 감염 차단이 무의미한 환경이다. 그러나 보건소에선 "약을 타서 집에 있으라"는 답변뿐이었다. 지침과 달리 ‘재택치료 대상자’로 분류된 A씨는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 여러 날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관리 원칙이 재택치료로 전환되면서 주거 환경이 열악한 확진자가 규정과 달리 주거지에 머물면서 재택치료를 하는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보호시설에 거주하는 주거취약자에 대해서도 시설 내 재택치료 원칙을 세우고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설 종사자들은 종전 복지서비스에 치료·방역 지원까지 맡게 돼 부담이 크다고 호소한다.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노숙인, 쪽방·고시원 거주자 등 주거취약층은 확진 시 생활치료센터나 임시생활시설 입소 대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별다른 보호 조치 없이 방치되는 일이 적지 않다.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B(41)씨 또한 지난 16일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생활치료센터 입소 등 필요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 B씨는 "쪽방은 내부에 취사 설비가 없어 끼니 해결이 제일 문제인데 식사 지원 안내도 전혀 없었다"며 "뇌전증을 앓고 있지만 일주일 가까이 도움 없이 혼자 지내며 격리가 해제될 날만 기다렸다"고 말했다.

주거취약층을 위한 복지시설에 머문다고 상황이 크게 나은 건 아니다. 대다수 시설은 격리 치료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코로나19의 노숙인·쪽방주민에 대한 영향 및 정책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 복지시설 140개소 중 32.2%는 감염의심자 격리 공간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 않은 시설도 격리 공간이 평균 1.8실에 불과했고, 전용 격리 공간을 상시 운영하는 곳은 25%뿐이었다. 지난해 서울 소재 노숙인 시설에선 여성 수면실을 격리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여성 노숙인을 위한 응급잠자리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다.

시설 내 집단감염 우려도 높다. 여성 노숙인 보호시설인 디딤센터 관계자는 "직원들이 모두 확진돼 혼자 사무실에서 일 처리를 하고 있다"며 "예전엔 시설 이용자가 확진되면 응급 물품이 지원됐지만, 방역지침이 바뀐 뒤엔 이마저 없어져 고시원 등에서 알아서 관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대훈 전국노숙인시설협회 사무국장은 "시설 종사자까지 집단감염이 되다 보니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며 "지원이 필요한 분들을 일일이 보살피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복지시설 내 재택치료 방침을 세운 만큼 시설을 최대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주거취약층에까지 재택치료를 요구하는 것은 당국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정부 방침은 경증 혹은 무증상이란 이유로 시설에서 집단 격리하라는 방식"이라며 "주거취약계층은 생활치료센터 등 정부 관리 시설에 입소할 대상이라는 원칙을 지켜 이들의 적절한 격리 및 치료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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