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영향력이 부를 창출하는 시대다. 그렇게 모인 돈은 다시 권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한 인플루언서의 날갯짓이 거대 권력의 자존심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과정을 '애나 만들기'를 통해 목도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모두 실화다.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만 빼고."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의 오프닝 문구다. 2013년 뉴욕 사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주인공 애나 델비(줄리아 가너). 그의 본명은 애나 소로킨이다. 맨해튼의 고급 호텔에 머무르며 고가의 명품을 온몸에 휘감고 다니는 그는 '독일에서 온 거액의 상속녀'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시간당 수백 달러의 개인 트레이너를 두고, 세계 전역의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해 인증샷을 남기는 그녀. 각종 행사장에 초대받아 카메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부와 영향력을 가진 친구들이 주변에 들끓어 신뢰도를 보장한다. 과연 빈털터리 애나는 어떻게 '그들만의 리그'에 입성했을까.
여기서 잠깐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자. 애나는 1991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2007년 독일로 이주했다. 태양광 사업을 한다던 아버지는 사실 트럭 운전사였고 현재 냉난방 사업을 하고 있다. 딸에게 물려줄 거액의 재산은? 당연히 없다.
대학을 중퇴한 그녀는 홍보 업계 인턴으로 일했고, 파리로 날아가 잡지사 인턴을 했다. 화려한 세계의 유혹에 빠져들면서 영향력의 힘을 깨닫게 된 것도 이때쯤일 것이다. 이후 자신에게 '애나 델비'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뉴욕으로 향해 새 출발에 나선다.
'뉴욕 라이프'를 시작한 그녀의 SNS는 부러움을 자아내는 고가의 물건들과 상류층만 접할 수 있는 장소, 음식 등으로 채워졌다. 새로 사귄 친구들 역시 부와 영향력을 지닌 사교계 인사들이었다. 그렇게 애나 델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금수저'가 되어갔다. 누구 하나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도박과도 같았던 '제2의 인생'에서 각본과 연출, 연기까지 도맡은 애나의 능력이 실로 비상하다. 남다른 두뇌를 사기가 아닌 예술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실제로 그녀는 "사진적 기억력의 소유자" "천재적 사업성을 가진 사람" 등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뻔뻔함과 대담함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시, 사기를 치려면 철면피는 기본이다.
애나는 비싼 호텔에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무전 취식은 물론 공짜로 개인 전용기에도 탑승했다. 은행에서 수만 달러를 빌렸고, 부자 지인의 카드를 몰래 긁기도 했다. 백 달러씩 건네는 통 큰 팁에 호텔 직원도 그녀의 편이 됐고, 법조계와 금융계 남자들은 애나의 특별한 매력에 빠져 판단력을 잃고 그녀를 도왔다.
재밌는 사실은 애나가 특별히 '예쁘지도, 성격이 좋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법정에 선 애나의 실제 사진을 봐도 단숨에 알 수 있다. 애나가 사람들을 홀린 건 남다른 안목과 분위기 때문이었다. 똑 부러지는 태도에 적당한 교양, 고급스러운 것들을 가려낼 줄 아는 눈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패션 잡지를 즐겨봤던 그녀가 잡지사와 홍보 일을 거치며 만들어낸 안목일 확률이 높다. '빈 깡통' 애나가 인맥과 돈을 빨아들인 비결이다.
사실 이 작품의 주된 목적은 애나의 가면 벗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체 누가 애나를 만들었는지' 논하는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애나 델비는 결코 소로킨 혼자서 완성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사기의 피해자이면서 '애나를 만든' 공범이기도 하다. 이들은 '부와 권력을 지닌 누군가가 그녀와 친구라서' 애나를 철석같이 믿었다.
피해자들에게도 각자의 목적은 있었다. 더 많은 수수료를 받기 위해 그녀의 대출 심사를 돕는 사람, 그녀의 언변과 매력을 이용해 투자를 끌어오고 싶은 남자친구, 애나가 지닌 영향력과 인맥을 사고 싶은 사람부터 애나의 돈으로 고급 여행을 즐기려던 친구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애나의 주변을 맴돌다 큰 피해를 봤다. 이들을 마냥 동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도 수많은 '애나'들은 존재한다. 언제부턴가 유튜브에서도 재력은 막강한 콘텐츠로 떠올랐다. 값비싼 명품 언박싱 영상이나 고급 호텔 투숙기 등은 '조회수 효자템'이 됐다. 아무 걱정 없이 살고 부모의 돈을 펑펑 쓰는 '금수저'의 삶을 추앙하는 세력이 생기고, 응원과 애정의 댓글이 수없이 달리는 것도 놀라운 현상 중 하나다. 이들이 진짜 부자인지 검증할 방법은 딱히 없다.
하지만 삐뚤어진 과시욕과 상류층에 대한 무조건적 선망은 건강한 문화적 흐름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자신이 동경하던 금수저가 실제 금수저가 아님이 밝혀지면 가장 먼저 돌변해 날선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잘못에 대한 질타를 넘어 극한의 분노와 배신감을 토로하는 건 그만큼 금수저의 삶에 깊게 몰입했다는 증거다.
'가짜 상속녀' 애나 소로킨의 변호사는 재판에서 배심원들을 향해 말했다. "소로킨은 뉴욕 사교계의 문을 열고 자리 잡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화려하고 현란한 매력에 쉽게 유혹되는 상류층의 시스템을 이용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약간의 애나가 있다."
'애나 만들기'는 시대의 변화와 SNS의 힘을 영악하게 활용한 '관종'의 종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그 사람도 '애나'일지 모른다는걸. 우리의 '좋아요'가 누군가의 사기 행각에 활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