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도 지낸다고요?

입력
2022.03.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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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에 조선의 풍속을 세계에 널리 알린 화가로 유명한 기산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 중 '신랑 초행, 신부 초행' 그림이 눈에 띈다. 요즘은 혼례 문화가 변하여 기산의 그림처럼 말이나 가마를 타지 않는다. 언어 표현은 문화와 밀접한데 어떤 문화가 바뀌면 그 문화와 연관된 언어 표현도 변하기 마련이다. 예전의 혼례는 여러 과정이 있어 혼인을 지낸다는 표현을 썼다.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것은 익숙한데 혼인도 지낸다고 하니 의아스럽다.

'혼인을 지내다' 표현이 사라진 사연은 무엇일까? 예전의 '신랑 초행'과 같은 혼례 문화가 없어지고 예식장에서 신식으로 '결혼'하는 것이 점차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혼례 문화가 바뀌면서 '혼인' 대신에 '결혼'을 더 자주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혼인을 지내다' 쓰임은 줄게 되었다. 지금은 '혼인을 지내다'의 흔적은 국어사전 '지내다' 뜻풀이에 '혼인이나 제사 따위의 관혼상제 같은 어떤 의식을 치르다'로 남았을 뿐이다.

혼례 문화에서 가장 쓰임의 변화가 많았던 말을 살펴보자. '혼인'과 '결혼'은 비슷한 말인데 기산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지금처럼 빈번하게 쓰는 '결혼'보다 '혼인'을 더 많이 썼다. 어떤 이는 '결혼'이 일본식 한자어로 우리가 오래전부터 썼던 '혼인'을 밀어내어 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낱말이 19세기 한자어 대역사전인 '국한회어'을 비롯한 여러 문헌 자료에 보여 '결혼'이 일본에서 건너온 한자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앞으로는 백 년 전처럼 혼인을 지내는 시대가 오기 어렵겠지만 20세기 초 우리말 시간에서는 여전히 혼인을 지내고 있을 것이다.

황용주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