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수도 키이우 수성전에 치중했던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매섭다. 개전 한 달을 맞은 시점에서 키이우를 향한 러시아군의 예봉을 꺾고 역으로 포위에 들어갔다. 되레 러시아군이 방어에 착수했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다만 러시아군이 핵ㆍ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우크라이나의 역공이 지속 가능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 국방부는 23일(현지시간) 전황 분석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 북동부 러시아군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 인근 마카리우와 모스춘 재점령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영국 국방부는 “이제 우크라이나군은 부차와 이르핀 주둔 러시아군을 포위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러시아군은 이미 사기 저하에 직면했고 보급 문제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 국방부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러시아군이 키이우 중심가에서 전날보다 35㎞ 더 물러나 현재 55㎞ 지점으로 후퇴했다”고 말했다. 또 키이우 북서부를 공략 중인 러시아군은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도 전황 분석을 통해 “러시아군이 지뢰를 설치하고 있다”며 “이는 그들이 (공세에서) 방어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표시”라고 해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은 24일 아조프해 연안 도시 베르디얀스크에 정박해있던 러시아 군함을 폭파시켰다고 밝혔다. 이리나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23일 하루 동안 마리우폴에서 자포리자로 2,912명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회전(會戰)을 노린다는 얘기다. 일리아 포노마렌코 키이우인디펜던트 기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 당국이) 안전상 이유로 모든 기자에게 24일 키이우 인근 전투지역에 접근하지 말라고 명했다”고 전했다. 정황상 우크라이나군의 대규모 반격 작전일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미국 국방부 당국자는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목표로 더 많은 공격을 수행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밝혔다. 실제 러시아 국방부는 24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 남동쪽에 위치한 이지움시를 점령했다고 발표하면서 “러시아군은 특수군사작전 임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러시아군이 맹공을 퍼붓고 있다는 의미다. 이지움시는 하르키우와 동부 돈바스를 잇는 도시인데, 우크라이나군은 전날 이곳에서 반격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거센 반격이 러시아를 평화협상으로 이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외교수장 격인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스페인 TVE방송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지금 협상보다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길 원한다”며 “(적어도) 몰도바 접경지역까지 연안 지역을 차지해 우크라이나를 바다로부터 격리시킬 의도”라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무기공급은 끊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렐 대표는 “모든 것이 보름 안에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무기 공급이 중요하다”며 “(전쟁 결과는)우크라이나가 저항할 역량에 달렸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 시민들에게 반전 운동을 독려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신의 아이들이 더 이상 이 땅에 죽기 위해 보내져서는 안 된다”며 “전쟁에서 아들들을 구하라”고 말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작전 중인 러시아군 중에 어린 징집병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을 상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또 “(러시아는) 민간인을 쏠 수 있는 모든 인간쓰레기(scum)를 물색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용병’ 투입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면서 “당신의 세금으로 전쟁 비용을 대지 말라”며 러시아 시민의 불복종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