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앞으로 유럽연합(EU) 등 '비우호국' 명단에 오른 국가들로부터 러시아산 가스 판매 대금으로 루블화만 받겠다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정부 관료들과의 회의에서 서방의 자국 자산 동결로 "신뢰가 붕괴됐다"며 대응 조치로 '비우호국'의 가스 판매 대금을 루블로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우리의 상품을 EU와 미국에 판매하고 달러나 유로로 대금을 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천연가스 수요의 40%를 러시아산에 의존하고 있는 EU 국가들은 그동안 주로 유로화로 가스 대금을 결제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존 계약에 따라 가스 공급 가격과 양은 유지할 것"이라며 "바뀌는 것은 결제 통화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정부와 중앙은행에는 일주일 내로 루블화 결제 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명령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행된 강력한 대러 제재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보인다. 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외화 보유액의 절반가량인 3,000억 달러가 동결돼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쟁 전 달러당 75루블 수준이었던 루블 가치는 이달 초 사상 최저치인 110 루블 이상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러시아 일간 모스크바타임스는 가스 대금의 루블화 결제는 폭락한 루블 가치를 끌어올릴 기회라고 평가했다.
'비우호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거나 제재에 동참한 48개 국가를 의미한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EU 회원국, 노르웨이, 스위스, 싱가포르, 우크라이나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