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국 2위 러시아…우크라 침공 한 달 만에 병력 20% 잃었다

입력
2022.03.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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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사흘 내 수도 점령 예상 뒤집고 러시아군 고전
①우크라 항전 ②러, 제공권 장악 실패 ③지리멸렬 지상군 ④지휘 체계 붕괴 ⑤경제 상황 악화 
향후 2~3주 관건..."푸틴, 국제질서 재편할 수도"

예상을 비웃는 침공이었으나 예상을 벗어난 장기전이 됐다. ‘세계 2위 군사대국’을 앞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역을 기습 침공했다. ‘설마’ 했던 침공이었지만, 압도적 군사력으로 사흘 내 수도 키이우까지 점령한 뒤 친러 괴뢰정권을 수립하는 데 속전속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개전 한 달이 되도록 러시아군이 수중에 넣은 주요 도시는 단 한 곳(헤르손)뿐. 손실은 불어났다. 러시아군에선 1만 명 가까운 전사자가 발생했다. 구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0년간 잃은 병력(1만5,000명)과 맞먹는다. 부상자도 2만 명에 달한다. 투입 병력 20% 안팎을 잃은 셈이다. 서방은 역사상 최강 제재로 러시아를 옥죄고 있다. 군 전략 실패와 나라 경제 파탄 위기에 악에 받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희생을 키우는 비극으로 전세를 이끌고 있다.

러시아군은 왜 실패했나


러시아군이 키이우까지 진격하는 데는 고작 9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압도적 전력을 앞세운 러시아군은 침공 첫날 키이우와 북동부 제2도시 하르키우 외곽까지 밀고 들어왔다. 항구 도시 오데사와 마리우폴에도 공습 경보가 울렸다.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 군 시설을 폭격했고,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 공항을 집중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동·남·북 3면에서 동시다발적 공격이 전개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의 운명은 끝을 앞두고 있다고 짐작됐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은 막강한 복병이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무혈입성할 것으로 예상한 러시아의 완전한 오판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침공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군이 움직이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며 “우리는 준비돼 있고, 강하고,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군과 국민을 대동단결시킨 점도 결사항전 의지를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침공 첫날부터 러시아 공습 헬기와 항공기를 잇따라 격추시키며 자국 영공을 지켜냈다. 전투기 보유 대수가 우크라이나보다 10배나 많은 러시아군은 현재까지도 공중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저스틴 브롱크 연구원은 “초기에 제공권을 장악하고 우크라이나군의 주요 군 시설을 정밀 타격하지 못한 ‘러시아 공군 실종’이야말로 러시아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평가했다.



거센 반격에 역사상 최강이라 자평했던 러시아 기갑부대 등 지상군은 우왕좌왕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매복과 정밀 타격 전술에 러시아군은 속수무책이었다. 평야와 하천이 많은 우크라이나의 자연 지형도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는 보루였다. 진흙으로 변한 평원에서 러시아 탱크는 허우적거렸고, 공병 지원 부족으로 수많은 하천에 가로막혔다. 키이우 코앞까지 들어온 장장 64㎞의 러시아군 호송대 행렬은 침공 나흘 만에 멈춰 섰다. 연료와 탄약 등 군수 물자가 떨어진 탓이다. 프랭크 맥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가 사흘 안에 항복할 것으로 예상해 병참을 고려하지 않고 진격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진단했다. ‘사흘 내 우크라이나 점령’이라는 러시아의 오만이 부른 실패였다.

작전 지휘도 엉망이었다. 통신 장비 고장으로 지휘관과 일선 병사들이 암호화한 통신망이 아닌 휴대전화로 전술을 주고 받았다. 감청으로 입수한 첩보를 토대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 장성들을 저격했다. 전장에 파견된 러시아 장성 20명 중 6명이 이렇게 쓰러졌다. 지휘 체계가 무너지고 식량과 피복 부족 등으로 사기가 꺾인 병사들은 전선을 이탈했다.



향후 2~3주가 관건…교착 장기화 전망도

러시아는 군대와 함께 경제도 휘청거렸다. 비축해 놓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로 서방의 경제 제재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는 생각보다 굳건하지 않았다. 서방의 전방위 제재에 교역이 멈추고, 돈줄은 막혔다. 루블화 가치는 폭락했다. 세계 곳곳에서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의 자산은 동결되거나 압류됐다. 스포츠, 예술계에서도 러시아는 퇴출 대상에 올랐다.

러시아군의 전략 실패와 파탄 직전의 경제 상황은 역설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변주됐다. 푸틴 대통령은 무고한 목숨을 대가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겠다는 최악의 전술로 전환했다. 러시아군은 마리우폴과 하르키우 등 주요 거점 도시에서 노약자 수백~수천 명이 대피한 주민 대피소나 병원 등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유엔이 집계한 민간인 사망자는 22일까지 953명, 부상자는 1,557명인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경 밖으로 떠밀려 간 피란민도 356만 명이 넘는다.



향후 전세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우크라이나군이 근 한 달 만에 러시아군에 빼앗긴 키이우 외곽 지역 통제권을 탈환하는 등 역전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보급 문제를 해결하고 용병 등 추가 병력을 투입할 경우 또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잭 워틀링 연구원이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가 초기 실패를 극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한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군사력을 회복할 기간을 2~3주 정도로 추산한다. 그 안에 평화협상이 타결돼야 전쟁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악의 경우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적지 않다.

현재로서는 전쟁 장기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뒤엎으려는 시도 중 하나”라며 “우크라이나를 정복하지 않더라도 교착상태를 지속하면서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국제 정세를 재편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도전하는 ‘신냉전’의 서막이 올랐다는 얘기다.


강지원 기자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