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51)는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빗장을 굳게 닫아 건 가운데서도 가장 활발하게 국경을 넘나드는 설치미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덴마크 첫 개인전 '이중 영혼'이 지난 5일부터 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제 삶의 형태가 좀 특이하죠. 한 발은 여기, 다른 발은 저기에 둔 찢어진 형태, 하이브리드랄까요." 최근 한국 언론과 만난 그는 "코로나19 이후 나같은 삶의 형태가 의미가 있고,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이런 때일수록 나라도 더 열심히, 격리를 감수하면서도 왔다 갔다 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해온 그의 세계는 줄곧 디아스포라의 자장 안에 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그만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든다. 덴마크 개인전에서 선보인 신작 '소리 나는 중간 유형-이중 영혼'도 그런 경우다. 이 작품은 덴마크에서도 중심부 바깥의 여성 예술가 피아 아르케(1958~2007)와 소냐 펠로브 만코바(1911~1984)의 삶을 각각 기리는 한 쌍의 조각이다.
피아 아르케는 덴마크의 식민 지배를 받은 그린란드 원주민인 이누이트족 엄마와 덴마크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스로를 '몽그렐(잡종견)'이라 칭하면서 덴마크에 의해 자행된 이누이트 탄압의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한 예술가다. 프랑스에서 대부분 생을 보낸 소냐 펠로브 만코바는 아프리카 출신 예술가인 남편과 아들의 그늘에 가려 뒤늦게 고국 덴마크에서 재조명된 조각가다.
양혜규는 "덴마크에서 전시하면서 그린란드라니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은 (덴마크와) 소수민족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린란드를 이번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어 "피아와 소냐는 둘 다 비주류고, 소외에 소외를 거듭한 생을 살았지만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놀라울 정도의 순도를 갖고 작업을 했다"라며 "이번 전시에서 내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돼줬다"고 덧붙였다. 신작은 양혜규식으로 써내려간 예술가 2인의 일대기이자 그만의 방식으로 그린 초상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초기작부터 대표작까지 아우르는 작품 세계 전반을 북유럽에 소개하는 이번 전시 이후에도 그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다. 다음 달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단체전,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 3인전, 베를린 바바라빈 갤러리 개인전을 앞뒀다. 10월에는 프랑스 파리 샹탈크루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지난해 처음 시도한 한지 콜라주 작업 '황홀망'을 유럽에서 본격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블라인드에 매료돼 오래 작업했듯 한지에 매료됐다"며 "유럽에 본격적으로 한지 작업을 보여주고픈 욕심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