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입지 좁아진 금융당국...슬금슬금 대출빗장 푸는 은행권

입력
2022.03.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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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뱅·우리·신한·하나, 전세대출 원상복귀
표면적으로는 수요감소·영업부진 원인
윤석열 당선인 규제 완화 기조에
금융당국 존재감 잃었다는 분석도

시중은행이 지난해 중단했던 대출을 재개하거나 한도를 늘리는 등 걸어 잠갔던 대출빗장을 풀고 있다. 기준금리가 오르고 수요가 줄면서 대출 영업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계부채 관리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금융당국의 입지가 대선 이후 급격히 좁아지자 은행권이 더 이상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있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이날부터 1주택자 대상 일반 전월세보증금 신규 대출을 재개하기로 했다. 카카오뱅크는 전 은행권의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발맞춰 지난해 10월 해당 대출을 중단했었다. 카카오뱅크 측은 이번 대출 재개를 두고 “실수요자를 위한 정상화 차원”이라고 밝혔다.

시중 은행들도 전세 대출 규제 풀기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21일부터, 신한·하나은행은 25일부터 전세 계약 갱신에 따른 대출 한도를 기존 '전셋값 증액 범위 내'에서 '갱신 계약서상 전셋값 80% 이내'로 변경하며 전세대출을 사실상 지난해 10월 이전 수준으로 원상 복귀시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전세 계약 갱신 시 대출한도가 큰 폭으로 올라간다. 예를 들어 갱신 과정에서 1,000만 원이 오른 1억 원짜리 전셋집을 재계약한다면, 기존에는 인상분(1,000만 원)에 대해서만 대출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갱신 전셋값의 80%(8,8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앞서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마이너스통장 최대 한도를 1억~1억5,000만 원까지 늘렸다. 시중은행은 지난해 금융당국의 총량규제에 맞춰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5,000만 원까지 낮춘 상태였다.

이처럼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낮춘 표면적인 이유는 △금리인상 △가계부채 관리강화 등으로 최근 대출영업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12월 709조529억 원 △올해 1월 707조6,895억 원 △지난달 705조9,373억 원으로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선 이후 좁아진 금융당국의 입지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대출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윤석열 후보가 당선이 되면서, 은행들이 강력한 대출 규제를 유지해온 금융당국의 눈치를 예전만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가계대출 관리를 총지휘했던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교체될 것이란 관측도 은행권의 행동 변화의 한 원인으로 해석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대출 수요가 줄어든 만큼 총량규제 관리에 여유가 생겨 대출 대상을 늘릴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그렇다 해도 지난해처럼 엄격하게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상황이었다면 은행권이 쉽사리 대출빗장을 풀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주희 기자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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